칼럼 무상함을 진여법계(眞如法界)로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시간은 화살과 같고 세월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말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나 생각은 그 빠르기가 천둥소리나 번갯불과도 같아서 시간보다 더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찰나에 생멸하여 앞생각이 스치고 나면 곧바로 뒷생각이 일어난다. 생각과 생각이 이어지는 것이 마치 밀물 썰물이 들어 왔다 나갔다 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아서 한 생각 사이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한 생각 사이에 순식간에 삼세간(三世間)을 다 나오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은 허공처럼 커서 마음에 허공을 품는다고 하여 마음에 아무런 걸리는 일이 없으면 협소한 잠자리라도 널찍하게 느껴지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대궐같은 호화주택도 협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다 ‘한 생각 사이’에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일념 삼천으로 한 생각에 삼천법계가 구족되어 있으며, 한 생각 사이로 육도윤회가 들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 불교는 첫째로 실천이요, 둘째도 실천이다. 누가 대신 일러줄 줄 수 없고,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다. 자
칼럼 끝없이 굴러가는 고통의 수레바퀴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에게는 두 손이 있으니 일을 해야 하고, 두 다리가 있으니 걸어다녀야 하고, 두 눈이 있으니 봐야 하고, 귀가 있으니 들어야 하고, 입이 있으니 말을 해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폐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옛날에 조수에 의해서 밀려 황금이 올라오는 아침이 오는데 그것도 인간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건져 올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은 옛부터 재물신이 재물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재물신이 재물을 가져다 줘도 예의를 바르게 갖춰 나가서 공손히 받아야지 게을러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재물신은 그 사람에게 재물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코 앞에 놓여진 빵도 앞쪽을 다 먹으면 손으로 돌려서 남은 뒤쪽을 먹어야 하는데, 게을러서 그것도 먹지 않는다면 배가 고파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굶어 죽을만큼 게을러빠진 사람은 없다. 천성적으로 게을러다가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자신이 먹을 만큼은 일을 한다. 눈은 세상 만물을 보도록 되어 있지만 사람은 그것으로 부족해서 현미경, 망원경을 발명해서 작은 것을 더 크게, 멀리 있는 것을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66회 다라국의 후예들 그런 지극한 정성에 부처님과 산신령도 감복했는지 아내에게 태기가 있더니 열 달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집 마나님의 정성이 지극하더니 역시 아들을 낳는 복을 받았구만.” 그런 말을 하며 이웃 사람들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평생 원하던 아들을 낳은 후에 산후 건강이 나빠서 한달 보름이나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허어 이럴 수가 있나..아들을 낳아 좋아 했더니 죽다니 사람의 화복은 알 수 없군.” 이웃 사람들은 전과 반대로 인생의 무상함을 슬프해 주었다. 이제 부친은 당연히 후처를 얻어서 어린 아들을 길러야 할 형편이었으나 그러지 않고 유모에게 맡겨서 길렀다. 그렇게 귀여워 하던 아들이 5살이 되어서 내년쯤은 독선생을 두고 글을 가르치려고 한 살 더 먹기만을 기다리던 부친은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자리에 눕게 되었다. 유명한 의원에게 보이고 값비싼 약을 써도 회복되지 않더니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부친은 이미 아내가 있을 때 시집 보낸 딸을 불러 남매를 병석 앞에 앉히고 유언을 했다. 그 자리에는 의원도 있었고, 문병을 온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죽거던 너희들 남매는 사이좋
권우상 동시 - 아버지의 고깃배 아버지의 고깃배 아버지가 날마다 타시던 손때 가득 묻은 고깃배가 갯벌 한쪽 구석에 그럼처럼 놓여 있습니다 자나깨나 바다에 나가 열심히 고기를 잡으며 눈물이 그렁해지도록 따뜻한 마음을 퍼나르시던 아버지의 고깃배 지금은 하늘 나라에 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고달픔만이 고깃배에 실려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몸을 혼자 갑판에 기대시고 닻을 올렸다 내렸다 하시며 거친 파도와 싸우시며 바다와 함께 살아오신 아버지 억척스럽게 바다에서 내가 잘 먹는 가자미도 잡아오시고 누나가 잘 먹은 꽁치도 잡아오시고 멸치, 고등어, 새우, 다랑어도 잡아 우리 두 남매를 길러내시던 아버지의 땀방울 묻은 고깃배는 갯마을 따뜻한 정을 나누며 지나간 세월의 저쪽 한 켠에서 오늘도 정겹게 나를 반깁니다. ◆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 ◆ 청구문화재단 문학작품현상공모 동시부문 당선 ◆ 부산mbc문예상 동시부문 당선
칼럼 충신을 내쫓는 군주는 나라 망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굴원은 초나라 왕족으로 초나라 희왕 때에 좌도(보좌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학문이 높고 식견이 뛰어나 정치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쌓았다. 궁중에서는 왕의 상담역으로서 나랏일을 도모하고 외교면에서도 탁월한 식견을 가져 왕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 그런데 조정의 중신들 중에는 굴원을 시기하고 모함하려는 간신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상관 대부는 굴원을 죽일려고 기회를 노렸다. 어느날 굴원은 희왕으로부터 법령의 초안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초안이 거의 완성될 무렵, 상관 대부가 찾아와서 초안을 강제로 왕에게 가져가려고 하여 이를 거부하자 그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는 법령을 작성할 때 언제나 굴원에게 명하십니다. 그런데 그는 법령이 공포될 적마다 이것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없으면 왕께서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하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희왕은 매우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왕은 굴원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자 굴원은 몹시 화가 났다. 왕은 모략 중상이나 아첨을 받아 들이고 신하들이 건의해도 옳고 그름을 간파하지 못하였다. 간신들이 나
칼럼 누구에게나 천재성은 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한 청년이 점쟁이 한테 가까운 시일내에 큰 화(禍)가 닥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청년은 혼비백산해서 하루 종일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닌 끝에 현자를 찾아냈다. 청년은 현자에게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방법을 요청했다. 현자는 청년의 말을 듣고 나서 청년에게 화를 없앨 방법을 알려 주었다. 산에 가서 따뜻한 온기가 있는 돌멩이를 하나 찾으면 악운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현자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 곧 바로 산으로 올라갔다. 산 중턱에 도착했을 때에야 청년은 주위의 모든 돌이 차갑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맹이를 하나 하나 만져본 청년은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이미 수 많은 돌을 만져본 청년은 실망한 나머지 털썩 자리에 주저 않았다. 돌맹이를 찾기 위해 돌을 만져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동안 앉아 있다보니 마음이 몹시 괴롭웠다. 그런데 청년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처음만큼 차갑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년은 즉시 몸을 일으켜 자신이 깔고 앉았던 돌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돌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갑자기 청년은 눈앞이 환해지며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깨달았
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50> 주름진 입 입이 앞으로 뛰어나온 듯 하며 입가에 주름이 입을 향하여 많이 져 잇늠 모양새이다. 동분서주 바쁘기만 하지만 얻을 것이 없다. 만년에 갈수록 실패가 많으며 고독한 여생을 보내는 상이다.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65회 다라국의 후예들 또 어느 해 가을, 용주골 마을에 심백흥(沈白興)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심백흥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를 못잊어 자기의 손으로 어머니의 초상을 그리어 하루 세 번씩 그 앞에 절하고 삼 일에 한 번씩 산소에 성묘하여 간소한 음식을 생시와 같이 차려 놓고 분향하였다. 이러한 효행이 알려지자 국가에서도 표창하였다. 또한 야로에 사는 박광림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박광림은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매일 산소에 나가 절하고 돌보고 있을 때 산소 옆에 있는 고사목(枯死木)이 마치 자기 어머니의 모양같이 보였다. 처음에는 의심이 나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역시 틀림없는 나무였으나 때때로 어머니의 환상이 나타났다. 박광림은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어 그 나무를 업고 집으로 돌아와 마루 위에 정성스레 올려 놓았다. 다시 쳐다보니 어머니의 부드러운 모습이 역력이 나타났다. “어머니!” 큰 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오직 어머니 모습만 나타날 뿐이었다. 다시 손으로 만져 보았으나 다만 싸늘한 나무만 서 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한번 퍼지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나라 방방곡곡에 다
칼럼 공부하는데 꼭 필요한 기억술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기억술은 고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이미 그리스 시대에 히피아스니 시모니데스가 기억술을 가르쳤다. 시모니데스의 방법은 만찬회에서 당한 사고를 계기로 탄생된 것이라고 한다. 식사도중 건물이 무너져서 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 그 자리에 있다가 살아난 시모니데스는 모든 참석자의 이름을 기억해서 시체 확인에 공헌했다. 좌석의 상황을 생각하자 그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모니데스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자리 배치법」이라는 기억술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자기 집처럼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건물을 연상한다. 그리고 각 방에 기억해야 할 대상을 놓았다고 상상하고 관련을 갖는다. 예를 들면 「현관으로 들어간 다음 거실로 들어 가고...」라는 순서에 따라서 그 곳에 배치한 대상을 떠올리는 방법이다. 유럽에서는 14∼16세기에 걸쳐 기억술이 유행해서 그때 많은 책이 저술되었다. 16세기 기억술을 중국에 전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기억하고 싶은 것 하나 하나에 이미지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 하나 하나에 기억에 의해 불려 나올 때까지 조용하게
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49> 다무진 입 항상 입을 힘차게 다물고 있으며 위, 아랫 입술이 맞닿은 자국이 한일(一)자로 되어 있으며 조개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과 같이 꼭 닫힌 모양새이다. 남자다운 성격으로서 인생을 즐기기 보다는 오로지 일에 열중하는 상이다. 성미가 까다로워서 가정적이지 못해 부부운이 나쁘다.
권우상 리포트 네 번째 창백한 말을 탄 자는 누구인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20C에 닥친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출처에 따라 수치에 차이는 있지만 한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으로 약 5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인간과 미생물 - Man and Microbes」은 지적한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치사적인 전염병은 1918년 6월에 프랑스의 전선을 휩쓸었다. 이 독감이 매우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인류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었다. 이 독감으로 몇 달 만에 프랑스에서 적군의 총탄으로 사망한 것보다 다 많은 미군이 죽었고 전쟁이 끝나면서 군인들이 귀향하면서 독감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고 한다. 21C에 와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거쳐 지금 코로라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가장 강력했던 자이르형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90%나 되어 공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전쟁, 기근, 질병 등의 인류의 재앙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이런 재앙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서 계시록에 보면 네 명의 말탄 자가 달리고 있다. 첫 번째 흰 말(白馬)을 탄 자는 하늘에서 통치하는 왕인데(계시록 6 : 2). 이 분은 예수 그리
칼럼 코로나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생각할 때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요즘 코로나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 될 때 도움이 되는 책은 성경이다. 성경은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느님께서” 주신 책이다. (고린도 후서 7:6) 성경이 정신 건강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경 덕분에 자살 충동을 떨쳐 낼 수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실제적인 조언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괴로운 감정을 계속 숨기다 보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의 짐이 무거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면 기분이 더 나아지고 자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게 될 수 있다. 자살 충동은 정신이나 마음에 병이 들었다는 징후일 수 있다. 몸에 병이 들었다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정신이나 마음의 병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정신이나 마음에 든 병도 고칠 수 있다. “참새 다섯 마리가 가치가 적은 동전 두 닢에 팔리지 않는가? 하지만 그중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으신다. ··· 두려워하지 말자. 여러분은 많은 참새보다 더 소중합니다.” (누가복음 12:6, 7)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