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TOYOTA의 경영 기법을 배워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미국 자동차 업계를 제치고 세계 선두 자리에 오르게 된 이유는 도요타만의 특이한 경영 기법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도요타의 인사제도는 한국의 대기업과 크게 달라 임원부터 대리까지 인격적인 모독감을 느끼지 않고 조직생활을 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와 시스템이다. 여기에다 노조의 적극적인 상생 협력은 도요타를 세계 일류 기업으로 끌어 올리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 등 도요타 그룹 계열사는 모두 마찬가지다. 단지 도요타 자동차는 미국 도요타 법인 비중이 워낙 커 미국식 경경 방식을 덴소(자회사)보다 많이 도입했다. 따라서 성과에 의한 승진 요소가 덴소보다는 조금 더 강한 편이지만 근본적으로 경영악화를 이유로 사람을 자르지 않는 인간존중 경영은 모두 같다. 최고 경영자와 도요타 오너 일가는 종업원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자신들의 당연한 의무하고 생각한다. 일종의 선민의식이지만 아랫 사람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강하다. 그런 의식은 인간존중의 신념에 그 뿌리를 이루고 있다. 도요타는 절대 오너 일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요하지 않는다. 수십만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74회 다라국의 후예들 부성지는 주인 고팔부를 사랑채 뒤쪽 헛간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참 안타까운 일이구만,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 팔자는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운명일세. 생각해 보게나. 말은 왜 졸지에 놀라서 도망을 하며, 말 고삐를 잡은 놈은 졸고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설사 말이 뛰어서 낙마를 하였기로서니 떨어져서 다치기나 할 것이지, 왜 그 자리에서 죽는단 말인가, 그러니 이게 다 타고난 사주팔자라는 것일세, 무엇보다도 자네 딸에게 장가를 못들어서 원한이 된 서한세가 있기 때문일세, 그러니 두 말 말고 내가 지금 가서 서한세로 하여금 관복을 입고 초례청으로 들어가게 할테니 죽은 신랑은 잊어버리고 그림 잘 그리는 화가 사위나 보도록 하게 어떤가?” 고팔배가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니 많은 사람들 앞에 창피 당하기는 마찬가지요, 딸은 혼례 준비를 했으니 이미 과부가 된 셈이었다. 고팔부는 체념한 듯이 남의 말 하듯 입을 열었다. “모르겠네, 자네 말대로 하게 나는 구경이나 하겠네.” 부성지는 옳지 됐다 하고 즉시 고팔부의 집 외양간에서 말을 한 필 끌어오라 해 서 올라 타고 채칙질을 하여 서운세 집으
칼럼 인생은 마음으로 사는 것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인생은 여건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좋은 여건에서 살면서 행복하고 그 반대로 나쁜 여건에서 살면 불행하다는 논리는 수긍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건이 좋으면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가끔 ‘마음이 편해야 살지!’ 하는 말을 듣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은 돈만 행복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돈 잘 버는 어느 탈렌트나 재벌그룹의 어느 간부처럼 여건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인생을 비관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반면에 여건이 열악하다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거의 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 물론 어느 정도는 여건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지만 여건이 나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인생을 임종의 순간을 위한 것이라고 정의하는 철학가가 있다. 임종의 순간을 맞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이 하는지 의문이다. 비록 여건은 열악하지만 임종을 아름답게 장식한 사람들이 많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알뜰히 모은 재산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회에 기부하고 죽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
칼럼 3년을 날지 못하는 새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사냥놀이와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 3년동안 미녀들의 치마폭에 둘러 싸여 조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충신들이 장왕에게 조정에 나와 올바른 정사를 해 줄 것을 날마다 상주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더구나 매일 신하들이 와서 조정에 나올 것은 상주하자 귀찮아 아예 조문(朝門)에 표찰을 써서 걸어 놓았다. 「앞으로 과인에게 상주하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칠 것이다」그러자 간(諫)하는 신하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장왕은 밤낯으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잔치를 벌이고 풍악을 즐겼다. 오거(伍擧)라는 신하가 장왕의 술판에 나타났다. 장왕은 왼쪽에는 진(秦)나라에서 맞아온 후궁을 안고, 오른쪽에는 월(越)나라에서 온 후궁을 안고 술에 취한 채 희희낙락 하고 있었다. “경은 어찌하여 들어 왔는가? 조문에 걸린 글귀를 보지 못했는가?” “보았사옵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어서 왔는가?” “신은 술을 마시거나 직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수께끼를 들려 드리려고 왔는데 알아 맞춰 보시겠습니까?” “수수께끼라, 그것 참 재미있겠구나!” 오거는 말했다. 어느날
칼럼 세계 책의 날, 우리를 일깨우는 스승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1995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세계인의 독서증진을 위해 매년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 정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4월 23일로 정한 것은 에스파냐의 카탈루냐 지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 축일과 1616년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 바로 이 날인 데서 유래한다. 국내에서는 2015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아 유네스코가 지정한 올해 책의 도시 인천광역시와 청계천 일대 등 전국 각지에서 독서 진흥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교육이나 교양의 목적은 지식을 통해 견식을 기르고 행위를 통해 덕을 기르는 데에 있다. 교양 있는 사람이나 이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니 하는 것은 반드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직시하고 올바르게 아끼고 보호하며 증오할 것은 증오할 줄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독서에서 얻어진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 생활에서 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버려진 쓰레기처럼 쓸모없는 지식을 껴안고 동거하는 것과 같다.
권우상 명리학자의 얼굴의 운명 <256> 뾰죽한 턱 얼굴이 볼 있는 부분까지는 평퍼짐한 편인데 턱으로 내려갈수록 좁아져서 턱끝이 뾰죽한 모양새이다. 독자적인 경영은 어렵고 말년운이 나빠지며 안정된 가정을 갖지 못한다. 여성은 남편운이 좋지 않다.
칼럼 변화를 부르며 새 인생을 만들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태도를 갖고 있다. 태도(attitude)란 「우리가 사고(思考)를 처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적 여과정치」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일반인의 경우 매일 4만∼5만여 가지의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서 판단했을 때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은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세상은 암울함과 파멸만이 존재하는 동굴속 같은 장소임에 틀림없다. 똑 같은 생각을 긍정적인 여과 장치로 걸러내는 사람에게 세상은 기회가 흘러 넘치는 밝고 모험이 가득한 장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쁜 태도와 좋은 태도는 어떤 것일까. 나쁜 태도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남을 탓하는 것이다. 좋은 태도는 실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쁜 태도는 변명을 하거나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좋은 태도는 결과를 창출한다. 나쁜 태도는 「가서 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좋은 태도는 「가서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쁜 태도는 인생을 참아야 하는 시련으로 받아 들인다. 좋은 태도는 인생을 즐겨야 하는 모험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나쁜 태도는 장미 넝쿨이 있을 때 가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3부 제73회 다라국의 후예들 그런 다음에 부성지는 취중인 척하고 이집 저집의 문벌이 어떻다는 것을 저울질하다가는 은근히 고팔배의 가난함을 들추어 내어 모닥불을 지폈다. “그러니 말일세, 본래 집안이 대대로 가난했으니 딸의 혼사에도 잘 사는 집으로 보낼 수 있겠나, 자네에게 좋은 수가 있네, 자네 과년한 딸이 있지 아니한가, 그 딸 가지고 그림 잘 그리는 사위 하나 얻어 보려나 어때?” “아, 이 사람이 미쳤나, 졸지에 그림 잘 그리는 사위는 무엇이야? 그리고 그림 잘 그리는 놈이 무엇 때문에 가난한 내 집 딸을 데려 가려구 한다든가?” “그럼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기는 할텐가? 어서 대답해 보게.” “그것은 그때 보아야지.” “그럼 이 좌석에서 당사자가 있으니 승낙을 하게, 바로 저 서운세 말일세, 나이는 이제 마흔 셋, 풍체 좋고 그림 잘 그리는 화가 어때, 자네 집 선대에서 이런 화가가 있었든가? 이 혼인만 하면 꽃이 활짝 피었네, 꽃이 활짝 피었어, 두 말 말고 그렇게 하게나.” 이 때에 좌중에 않았던 여러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심지어 부성지를 광인(狂人)으로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오직 고
칼럼 역사 왜곡 백제 지명 너무 많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 백제 지명에 왜곡된 이름이 너무 많다. 이는 삼한통일 이후 임의대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사록에 따르면 연산은 백제때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인데 신라때 황산(黃山)으로 고쳤고, 고려초기에 연산현으로 고쳤다. 이성(尼城)은 백제때 열야산군(熱也山郡)인데, 신라때 이산(尼山)으로 고쳤다. 태종때 석성(石城)과 합쳐서 이산성이라 일컫다가 다시 나누었다. 노산(魯山)은 노성(魯城)이라고도 한다. 부여는 백제때 소부리군(所夫里郡)인데, 사비(泗沘)라고도 한다. 성왕이 이곳에 와서 도읍하고 이름을 남부여라 하는데, 신라때 부여군으로 고쳤다. 반월(半月)은 여주(餘州)라고도 한다. 석성(石城)은 백제 때의 진악산현(珍惡山縣)인데, 신라때 석산(石山)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 석성으로 고쳤다. 태종(1414)때 이산(尼山)과 합쳐서 이성(尼城)을 만들었더니, 후에 고다진(古多津)이 왕래하는 요충지라 해서 다시 나누어서 현을 만들었다. 비인(庇仁)에 성이 있다. 백제때의 비중현(比衆縣)이니, 신라때 비인으로 고쳤다. 남포(藍浦에) 성이 있다. 백제때의 사포현(寺浦縣)이니, 신라때 남포로 고쳤고 공양왕이 진(
칼럼 봄의 소중함은 겨울이 있기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사람은 누구나 하루를 살면서 그 하루를 얼마나 참되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은 드물다. 하루 해가 넘어가면 하루를 살았다고 하는 것은 막연한 시간의 흐름에 자기를 던져버린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시간 속에 아름다운 언행(言行)을 다듬어 내는 것이 문제다. 조그만 선행을 베풀고서 최선의 일을 치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만족하는 병, 잘난 체 하는 병이다. <체병>이 큰 병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려면 언제나 자기 겸손이 앞서야 한다. 아무리 악한 도적이나 폭력배라도 겸손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주먹을 내밀 수가 없다. 우리는 항상 착한 마음으로 모든 대상에게 겸손한 손짓과 마음의 훈김을 보내야 한다. 도덕으로 쌓은 공덕이 있어야 그 삶의 질이 밝게 트인다. 탐욕에 사로잡혀 악습에 젖은 악행만을 일삼는다면 그 길은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 이르게 된다. 우리 사회에는 지식과 판단이 흐린 사람이 마구 독선과 고집으로 온갖 일을 함부로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
4월 13일 (음력 3월 2일) 오늘의 운세 권우상명리학연구소 TEL (051) 365 - 0826 子 84년생 - 충분히 생각한 후에 결정하라. 72년생 - 주머니 사정이 두두룩하니 기분이 좋다. 60년생 - 오전보다 오후에 일이 잘 풀려 나간다. 48년생 - 주변 사람이 주겠으 나 너무 믿지 마라. 36년생 - 자녀에게 뜻밖에 기쁜 소식이 있겠다. -------------------------------------------------------------------- 丑 85년생 - 하는 일의 실마디가 풀려 나간다. 73년생 - 지출에 신경써야 낭비가 없다. 61년생 - 때로는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라. 49년생 - 남의 일이 뛰어들면 손해본다. 37년생 - 순간적인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후회가 없다 -------------------------------------------------------------------- 寅 86년생 - 생각없이 맹진하는 것은 위험하다. 74년생 - 방심하면 뜻밖에 손실이 따른 다. 62년생 - 힘들어도 스스로 일을 밀고 나가라. 50년생 - 몸과 마음이 바빠야 일에 보람을 갖는다. 38년생 - 남과의 다툼이나 시비를
칼럼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장자(莊子)가 산속을 거닐다가 나무들이 많이 베어진 곳을 발견하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베어 나갔지만 한 그루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장자가 그 연유를 묻자 벌목공들은 그 큰 나무는 규칙적으로 자라지 않아서 베어 보았자 사용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장자는 산에서 내려와 친구 집에 들렸다. 친구는 장자를 반갑게 맞아 주면서 대접을 하기 위해 마당에서 놀고 있는 거위를 잡으라고 하인에게 일렀다. 그러자 하인은 물었다. “가위가 세 마리 있는데 어떤 거위를 죽일까요?” 장자는 하인에게 물었다. “세 마리 다 우느냐?” “아닙니다. 두 마리는 우는데 한 마리는 울지 않습니다” “그럼 울지 않는 거위를 죽이거라”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죽어야 하는 생물이란 어떤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많은 나무들 중에서 쓸모가 있는 나무는 모두가 베어졌고, 큰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살아 남았다. 즉 쓸모가 있어 죽었다. 그러나 거위는 나무와는 반대로 쓸모가 없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쓸모가 있는 것」과 「쓸모가 없는 것」의 기준은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