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2부 제31회 다라국의 후예들 그러면서 궁터를 보니 음만 있는 음기지상(陰氣之相)이라 여자 때문에 궁중에서 큰 우환이 생길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하린은 입궐하자 마자 곧바로 거타지왕에게 걸객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보아하니 예사로운 사람이 아닌 것 같으니 그 자를 불러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혹시 술객이라면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자 거타지왕(巨他之王)은 그 자를 불러 오라고 하였다. 하린(河吝)이 나가자 거타지왕은 궁성의 터가 음기지상이라 여자 때문에 궁중에서 큰 우환이 생길 것이라고 한 말을 머리 속에 되뇌이며 문득 산속에서 데리고 온 음기가 강한 여자 때문에 우환이 생길 것이 아닌가 하고 지레 짐작하였다. 하린은 급히 궁밖으로 나가 술객을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하린은 말을 타고 멀리까지 가 보았으나 술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린은 허탈한 모습으로 궁궐로 돌아오고 있는데 궁문을 지척에 두고 앞에 술객이 나타났다. 하린河吝은 반가운 마음에서 “어르신!” 하고 부르자 술객(術客)은 “왜 그러시오?" 하고 물었다. 하린은 대왕께서 모시고 오라는 분부가 계셨다고 하
명리학자 권우상의 얼굴의 운명 <231> 틀어진 인중 인중이 똑바르지 못하고 틀어지게 생긴 모양새이다. 신의가 없고 좋지 못한 심성이라서 남을 못살게 하고 실패가 많다. 부모덕도 없고 자식의 운도 없으며 고독해진다. 50대 초반의 운이 극히 나쁘다.
칼럼 단추 하나 때문에 참패한 나폴레옹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폴레옹 군대는 가장 막강했던 1812년 6월에는 병력수가 60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막강한 군대가 그해 12월에는 1만명 이만으로 대폭 줄었다. 나폴레옹은 빨리 군대를 재건하고 불안정한 수도의 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근위대를 뒤따라 오게 하고 일부 측근들만 대동하여 전선에서 출발, 파리로 향했다. 총지휘권은 뮈라에게 인계했는데 나폴리 왕이기도 했던 뮈라는 빌뉴스를 포기하고 남은 군대와 함께 얼어붙은 네만 강을 건너 바르샤바로 후퇴한 후,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왕국 내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외젠 드 보아르네에게 총지휘권을 넘겨주고 나폴리로 떠났다. 남아 있는 병사는 원정 직전과 비교하면 얼마 되지 않아 네만 강 서쪽에 도착한 때에는 나폴레옹 병력은 겨우 5천여 명만이 싸울 수 있는 상태였다. 마크도날이 이끄는 라트비아의 나폴레옹군은 그해 12월 20일 철수를 시작했다. 나폴레옹의 남은 병력은 누더기 같은 군복을 걸치고 서(西)러시아 보리소프 인근의 베레지나 강을 건너 모스코바로부터 멀어지는 길고 긴 퇴각 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때 러시아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생존한
명리학자 권우상의 얼굴의 운명 <230> 평행 인중 위 아래의 넓이가 독 같고 홈이 깊은 단정한 모양새이다. 자식운이 좋고 부자로 살며 충성스럽고 의로운 상이다.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2부 제30회 다라국의 후예들 그제야 여자는 자신에게 여의주를 주겠다고 한 사람이 탁순국의 왕인줄 알고는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그러면서 왕인줄 모르고 무례를 범하였으니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자 거타지왕은 “무례라니 당치도 않다.” 하면서 너에게 여의주를 준다고 했으니 “자 여기 있다.” 하면서 거타지왕은 여의주를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공손히 여의주를 받았다. 여의주에서는 유난히 광채가 눈부시게 빛났다. 여의주를 손에 쥔 여자는 여의주를 들어다 보며 황홀한 듯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거타지왕은 여자를 궁궐에 머물게 하고는 이틀이 지나자 여자가 머물고 있는 방을 찾았다. “그래 여의주를 굴리고 있으니 음기(淫氣)가 제압되었느냐?” 하고 묻자 여자는 "제압되기는 커녕 음기가 더욱 발동하여 소녀를 더욱 견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 "소녀가 여기에 오기전 저에게 여의주를 주시면 배필이 되겠다고 약속을 하였사오니 저는 이제 대왕의 배필이니 죽이시던 살리시던 소녀는 이제 지아비를 따를 것이옵니다.“ 하면서 아직 한번도 마음 놓고 지아비를 모시지 못하였으니 오늘밤에는 소녀의 침소에 드시라고
칼럼 적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쟁에 있어 수비는 내가 하기에 달려 있으므로 완벽하게 할 수 있으나, 적에게 이기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옛부터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철벽 수비를 한 다음, 적이 약점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1943년 1월, 스탈린 그라드에서 승리한 후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던 소련군은 독일 최고 지휘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교묘한 후퇴작전과 보급로 차단으로 3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단에서 진퇴양난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소련군을 남북에서 협공하여 격파시키고, 단번에 동부전선의 전황을 만회하려는 히틀러 총통의 제안으로 실행된 것이 「세계 최대의 전차전」이라는 불리는 「치타델 작전」이다. 군사적으로 이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작전이었으나, 히틀러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즉 작전 개시를 너무 늦춘 것이다. 그는 이 계획을 더욱 완벽하게 실행하기 위해 소련의 우수한 T-34 중전차에 대항할 수 있는 5호 전차 판터와 6호 전차 티거를 확보하기 위해 3개월이라는 시간을 낭비하면서 결국 소년측이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었다. 이때 소련군이 취한 전법은
칼럼 사슴도 섰다가 앉았다가 하지요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어느 시골에 청년이 장가를 들었는데 아내가 매우 예뻤다. 그래서 이 청년은 아내를 매우 사랑해 밤마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사는 동안 아내는 부부관계의 희열을 알았고, 이웃에 사는 한 총각과 눈이 맞아 두 사람은 깊은 관계를 맺었지만 남편은 아내가 이웃 총각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아내가 너무 예쁘니 항상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하루는 종일 집을 떠나 있게 되자 그는 아내에게 한 가지 장치를 해 놓으려고 마음먹고 아내를 불렀다. “여보! 당신이 너무 예쁘니 내가 아침부터 밤까지 집을 비우게 되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당신 옥문 양쪽 허벅자에 사슴을 한 마리씩 그려 놓을테니 내가 없는 동안 누가 당신을 유혹해도 절대로 넘어가선 안돼요. 내가 돌아 와서 그려 놓은 사슴이 그대로 선명하게 있어야지 만약에 조금이라도 지워졌으면 당신을 의심을 의심할 것이오.” “예. 그렇게 해 놓고 마음 놓고 잘 다녀와요.” 아내는 옷을 벗고 반듯이 눕자 남편은 벼룻집을 가지고 와서 먹을 갈더니 오른 손에 붓을 들고 왼손으로는 아내의 옥문 두둑을 짚고 몸을 구부려 열심히 양쪽 허벅지
칼럼 실패해도 성공적으로 실패하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당신이 현재 2억이라는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 영원히 2억이겠지만 잘만 굴리면 3억도 되고 4억도 될 수 있다. 2억이 4억으로 되면 누구나 사용하는 게 좋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돈을 불리기 위한 돈의 사용법, 즉 현명한 투자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골동품 수집가는 오랜 세월 수집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눈이 트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역시 돈을 쓰다 보면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돈을 잘 쓴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현명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 해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골동품 수집가 역시 처음엔 몇 번씩 속아 비싼 가격에 구입하기도 하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이러한 지출은 「수업료」인 셈이다. 경영자는 누구보다도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수업료를 내는 것을 꺼려해서는 배울수도 없고 성장 할 수도 없다. 절대로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경영자는 적극적인 투자를 결코
권우상(權禹相) 장편 역사소설 제2부 제29회 다라국의 후예들 제2부 대정벌 추운 겨울 어느날, 탁순국(진해) 거타지왕은 사냥을 하기 위해 혼자 말을 타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사냥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바람은 귀에 쌩쌩 매섭게 불어 오고 몸이 떨리며 배가 고팠다. 그래서 돌아갈려고 말 머리를 돌리는데 멀리 불빛 같은 것이 보이기에 이것이 혹시 산막(山幕 : 산지기가 지키는 오두막)인가 하여 불빛을 향해 달려가 사립문을 두드리자 혼인 할 만한 처녀가 방안에서 나오며 “어떤 분이신데 이 산속 누추한 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묻자 거타지왕(巨他之王)은 “나는 사냥을 나왔다가 날이 저물어 돌아갈려는 참에 불빛을 보고 찾아 왔다” 하였다. 처녀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조그마한 상에 저녁밥을 차려왔다. 거타지왕은 이런 깊은 산중에 낭자가 홀로 살기에는 맞지 않을텐데 무슨 까닭인지 말해 보라고 하자 처녀가 하는 말이 “소녀는 양가의 딸이 온데 혼인하여 첫날밤을 맞으면 신랑이 까닭없이 죽으니 다른 남자에게 개가를 했지만 가는 곳마다 신랑이 죽었사옵니다. 그러자 소녀가 점장이한테 물으니 제가 음기(淫氣)가 너무 세어 그렇다고 합지요.” “......
칼럼 통치자는 사람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 한(韓)나라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누워 있었다. 그때 전관(典冠)이 군주가 잠든 것을 보고는 추워서 감기라도 들까 염려하여 옥체위에 옷을 덮어 주었다. 소후는 잠에서 깨어나자 대단히 기뻐하면서 신하들에게 누가 옷을 덮어 주었느냐고 묻자 신하들은 전관이라고 하자, 관모(冠帽)에 관한 일을 맡고 있는 전의(典衣)와 옷을 덮어준 전관 두 사람을 처벌했다. 여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에게 옷을 덮어 준 것이 왜 나쁘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데 왜 처벌했을까? 그 이유는 임금과 신하간에는 사사로운 개인 감정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엄격한 규정 때문이다. 군주가 낮잠을 자고 있다면 옷을 담당하고 있는 내관이 덮어 주는 것이 마땅한데도 내관은 방심하여, 다른 사람으로의 손을 빌렸으므로 결국 직무를 태만히 했고, 전관은 자기의 직무가 아닌 일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군주의 의관을 담당하는 내관이 있는데, 전관이 자신의 직무 범위를 벗어 났다는 것이다. 소후는 추위에 병에 걸리는 것을 즐겼던 것이 아니라 직무의 권한을 범하는 것은 감기보다도 더 큰 해(害)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칼럼 핵 보유국이 핵 포기한 국가는 없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그는 1972년 미·중 간의 교류로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명리학자 권우상의 얼굴의 운명 <229> 중앙이 넓은 인중 위 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넓어서 둥글어 보이는 모양새이다. 질고로 자식을 끝까지 키우지 못하며 병고, 가난 등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지만 말년에도 고생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