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력은 功을 세웠을 때 떠나는 것이 天命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이 세상의 넓은 지상에는 인간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보편적인 체계와 기술의 총애인 문명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장소가 없었다. 옛 중국의 거대한 대륙도 그런 장소중의 하나였다. 이 지구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이 산다. 문명이란 다양한 생활양식을 가진 여러 민족에 서로 이질적인 문화를 한 장소에서 녹여 내는 조건이 갖추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중국 대륙의 경우는 그랬다. 물론 거대한 용광로는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을 기반으로 했다. 중국 역사를 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후대에 갈수록 문화의 균일성이 높아지면서 지적 호기심이 약해진다. 진(秦)의 시황제 정(政)이 6개국을 정복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그 전까지는 중국 대륙은 수많은 왕국으로 분활되어 있었다. 하지만 6개국의 백성들에게는 통일이 오히려 참혹한 삶이 되었다. 진(秦) 제국의 가혹한 법치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진(秦)의 법치주의는 백성을 위한 법치가 아니라, 진시황 자신을 위한 법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북한의 김정은이 진시황에 비교괴고, 옛날로 말하면 북한 김정은이 진시황에 비교된다. 한 마디로 진시황의 말 한 마디
칼럼 歷史는 事實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지난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당시 찬성하는 정부와 여당측은 ㅇ 하나의 사건에 대해 모두 다른 서술을 하고 있다. ㅇ 일부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쪽만 서술하는 편향성을 띠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한국 진보좌파 세력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기회주의, 굴욕의 역사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좌파세력이 준동하며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과 진보세력 측은 ㅇ 국정교과서 체제에 의한 역사교육은 구시대(유신시대)의 유물이다. ㅇ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2003년 역사 교과서 검정제도를 도입한 명분은 다양한 교과서의 경쟁을 통해 교과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학생들에게 역사를 보는 여러 갈래의 관점을 보여주자
칼럼 암살자들’ 영화/드라마 역사왜곡 무엇이 문제인가?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란에 빠지자 제작진 측은 “정치적 목적은 없다”고 하면서 제작진은 그러한 의견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작품을 창작의 산물로만 바라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의 자녀 어린 아들과 딸이 서로 사랑하다가 성인이 되자 결혼을 한다는 시놉시스의 영화가 있다고 하면 그때도 작품의 창작산물로 봐 달라고 하겠는가? 영화, 드라마, 연극, 소설 등 모든 작품이 창작물이라고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천민적인 발상이다. 역사 왜곡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bs 역사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경우 출항하자 마자 암초에 부딪치면서 방영이 폐지된 적이 있었다. 문제가 된 핵심은 이렇다. ㅇ중국 역사 드라마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등장 인물의 검(劍)과 의상 및 머리 스타일이다. ㅇ퓨전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음식들 즉 중국 월병, 오리알이나 달걀을 삭힌 피단(송화단) 그리고 중국 술이 나온다. ㅇ조
칼럼 북한과 동등하게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전 독일 수상 헬무트 슈미트는 세계2차대전 발발 당시 21세였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비롯한 동부전선 전투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석방될 때 계급은 중위였다. 그는 함부르크 정부의 경제부서에서 근무했다. 함부르크시청에서 내부참사관(Innensenator)으로 일하던 1962년 2월, 엘베강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에는 재난대책을 진두지휘, 경찰, 군병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함부르크시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크게 줄였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으로 인해 전국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했을 때 서독은 정치적, 경계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각종 납치와 테러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교훈을 얻은 슈미트 내각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며 일괄적인 강경대응을 펼쳐나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7년 소말리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루프트한자의 민항기를 납치하자 특공대를 파견해서 민간인 피해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전부 제거한 사건이다. 그는 1972년 미·중 간의 교류로 데탕트 분위기가 조
칼럼 두 개의 음낭이 있으니 송(宋)자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벙어리 아내와 장님 남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갑자기 대문 밖이 소란스러워 눈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들을 수 남편이 아내에게 손짓하여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가보라고 했다. 벙어리 아내가 대문 밖에 나가보고 와서 손짓과 몸짓으로 밖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끌고 와 자기 유방 사이에다 ‘사람 인(人)자’를 써 보였다.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 사람 인자 양 옆에 젖꼭지 두 점이 있으니 불 화(火)가 되는구먼, 그러니까 불이 난 모양인데 어디에서 불이 났지?“ 하고 다시 물었다. 아내가 손을 끌고 가서 자기의 사타구니 옥문(玉門)에다 갖다 댔다. 남편은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아, 그곳은 항상 습한 곳이니 저 건너 이동(젖을니 泥洞)에서 불이 났나 보구만.“ 이렇게 짐작으로 말했다. 이어서 남편은 아내에게 누구의 집에서 불이 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자기의 입을 남편 입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이런 몸짓을 보고는 허허허! 웃으며 ”그렇지, 두 입이 합쳐진 글자라면 여(呂)서방 집이구먼, 그런데 그 집에 불이 났으
칼럼 삶에 조건이 복잡할수록 신중하게 판단해야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아동문학가 산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호랑이는 배가 고파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 여우를 만났다. “이 녀석, 마침 잘 만났다. 배가 고파 견디기 어렵던 참인데 너를 만났으니 잘됐다!” 그러자 교활한 여우는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런 말은 애당초 하지도 마시요. 산속의 짐승들은 모두 나를 왕으로 모시고 있소. 내가 죽는 건 조금도 서러울 게 없소만 내가 세상을 떠나면 산짐승들이 점차 소멸하고 말텐데, 당신이 지금 당장의 시장기는 면할지 몰라도 앞으로 쥐새끼 한 마리도 없을텐데, 뭘 먹고 살아나가겠소?“ ”한 입에도 차지 않을 녀석이 무슨 위풍이 있다고 모든 짐승들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왕으로 섬긴 단 말이냐?“ ”나는 태어나서부터 거짓말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소, 그래 정 믿어지지 않으면 내 뒤를 따라와 보시오. 내가 정말 산속의 왕이라면 잡아 먹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잡아 먹어도 좋소“ 여우가 앞에서 촐랑대며 뛰어가니 호랑이는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따라갔다. 여우는 참나무가 우거진 산속으로 뛰어 갔다. 한참 입맛을 다시며 참나무 잎을
칼럼 바르지 못한 정치는 적을 이기지 못한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위나라 관구검은 고구려(동천왕)를 침공하여 위험에 빠뜨린 적이 있어서 한국인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인데 훗날 사마사와 싸우다가 힘없이 패하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관구검을 위나라의 마지막 충신으로 알고 있지만 중국 역사를 들어다 보면 그는 성공하지 못한 관원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통치나 싸움은 권력에 대한 야욕이나 지배층의 권력 쟁탈에 그칠뿐 절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다. 반대로 가흑한 착취에 저항하여 일어난 민중의 봉기는 한 때에는 욕을 먹었다 하더라도 후세에는 높은 평가를 듣게 마련이다. 한(漢)나라가 위(魏), 촉(蜀), 오(吳)로 쪼개져 위주 조조와 촉주 유비가 싸울 때 유비는 언제나 백성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점령지에 입성해서도 백성들을 괴롭히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장수나 병사는 가차없이 목을 쳤다. 심지어는 유비는 항복하지 않는 적군의 장수도 달래면서 항복을 받아내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조조는 유비와 달랐다. 관구검도 지방의 태수를 지내면서 뇌물을 좋아해 백성들의 인심을 얻지 못했고 결국 도망가다가 자신의 부하의 손에 허망
칼럼 자본주의 가치와 사회주의 계급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예언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과 노동력이 분리되어 자본가 계급과 사회계급(노동계급)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제체제이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생산관계는 악화되어 자본주의는 저절로 붕괴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와같은 마르크스의 논리는 자본주의의 붕괴 과정을 현실적으로 해명하는데 실패했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좁은 골목에 들어 온 것 같지만 발전의 여지를 자체내에서 지니고 있다.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는 부단히 발전을 거듭해 왔다. 철도나 도로 및 발전소의 건설, 자동차나 선박, 제철공업 등 모든 새로운 생산활동은 카네기, 록펠러와 같은 기업은 끊임없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반복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달리 자본주의, 특히 미국의 자본주의는 그동안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 왔다. 물론 이런 경제 발전의 과정에서 독점 기업이 생겨날 수 있으며 이 독점의 경향은 흔히 경제의 ‘동맥경화증’ 같은 증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칼럼 통치자에게 德이 없으면 백성들은 고달프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한비(韓非)의 저서(韓非子)에는 거대한 집단 조직의 최고 관리자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점이 기록돼 있다. 한비는 인간은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는 애정도 아니고 배려심도 아니며 오로지 이익뿐이다.”라는 냉철하고 일관된 사상을 담고 있다. 한비는 이렇게 말했다. “뱀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애벌래와 비슷하다. 뱀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애벌레를 보면 누구나 징그러워한다. 그러나 어부는 맨손으로 뱀장어를 잡고 여자는 맨손으로 누에를 잡는다.”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누구든 용감해진다는 말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길 바라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빨리 죽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전자가 좋은 사람이고 후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 수레를 팔 수 없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에게 관을 팔 수 없을 뿐이다. 사람을 증오해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만 관을 팔 수 있고, 그 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칼럼 올바른 생각이 성공으로 이끌어 준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동일한 조건의 두 여자가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고 있다고 하자. 한 여자는 “우리 엄마 날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이젠 내가 엄마를 돌봐야지.“ 하는데 다른 여자는 ”아이구 지긋지긋해 이렇게 오래 살아 있으니 내가 못살아“ 한다. 이렇게 서로 말이 다른 것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생각이 다를까? 이것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생각이 굳으면 성격이 되고 성격이 굳으면 습관(행동)이 되고 습관이 굳으면 사물을 분별하는 가치관이 되고 이 가치관은 삶에 나타난다. 어느 스님과 석공의 이런 대화가 있다. 스님이 길을 가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돌을 쪼고 있는 석공을 보자 “지금 무얼 만들고 있습니까?” 하고 묻자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며 기쁘게 대답하는 한다. 스님은 다시 한참동안 걸어 가다가 다른 석공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하자 “보면 모릅니까? 딱딱한 돌을 쪼느라 손도 아프고 지겨운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이처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세상을 보는 안목이 다르다. 왜 다른가? 삶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칼럼 세상적 근심, 거룩한 근심, 돈 없는 걱정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인간은 살아가면서 가끔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죄책감은 자신이 하나님이나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어겼음을 알 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정서적 반응을 「죄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렇게 불러서는 안된다. 대신에 성경이 그것에 대해 사용하는 용어는 「근심(sorrow)」이다. 고린더 후서 7장 9-11절을 보면 이런 근심을 두 가지 형태로 논의하고 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 내었느니라」 사도 바
칼럼 탈무드, 세속의 권위를 억제하는 유대인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세속의 권위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고대 아시리아나 그리스 등의 국가 왕권은 매우 강력했지만 유대 사회의 왕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만 했다. 이것은 유대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예외가 아니었다.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성서에 따르면 모세는 귀족 가문의 한 사람으로 이집트의 궁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당시에는 귀족과 노예 신분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일부는 자유인으로 태어나고, 또 다른 일부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인 시대였다. 노예와 자유인의 차이는 보잘 것 없는 쇠붙이와 존귀한 금의 차이처럼 여겨졌다. 쇠를 금으로 바꿀 수 없듯이 노예가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의 지배 계급이나 현인들 조차 이와 같은 일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일신의 쾌락만 위해서 살지 않았다. 그는 역경의 환경에 놓여 있는 노예의 처지를 매우 가슴 아파했다. 혹사 당하는 노예를 위로하고 어루만지며 모세가 말했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괴롭다. 당신들을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모세는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