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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칼럼] ‘순환보직’이라는 대책이 겨눈 곳, 경찰관 가족의 삶은 어디로 가나

글 - 이안성 구미일보 대표·발행인

최근 사회를 분노와 충격에 빠뜨린 여고생 살인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 고개 숙이지 않을 국민은 없으며, 치안 최일선에서 발생한 공백과 허점에 대해 철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지극히 정당하다.

 

그러나 이에 응답하듯 행정안전부가 꺼내 든 순환보직제 도입 카드를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고 씁쓸하다. 거대한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꺼내 드는 인사 개혁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과연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정답인지 강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순환보직제는 얼핏 보면 유착을 방지하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혁신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치안 최일선에서 묵묵히 헌신해 온 경찰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가혹한 형벌과 다름없다.

 

정책이 이대로 실행된다면 경찰 공무원들은 평생을 떠돌이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 직급과 직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상적인 순환보직 주기를 대입해 보면 퇴직할 때까지 적게는 이삼 년, 많게는 사오 년마다 삶의 터전을 통째로 옮겨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근무지 하나가 바뀌는 행정적 절차가 아니다. 몇 년마다 전세 계약을 새로 맺고 이삿짐을 싸며 정착과 부유를 반복해야 하는 삶은 인간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친구들과 겨우 정을 붙이고 적응할 만하면 다시 짐을 싸야 한다. 전학을 밥 먹듯 하며 매번 새로운 환경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의 정서적 불안과 학업 결손은 고스란히 부모인 경찰관의 마음속 응어리로 남을 것이다.

 

더욱이 부부가 모두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경찰관인 맞벌이 가정의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부부 경찰관이 각기 다른 관할지로 튕겨 나가 발령을 받게 된다면, 이들은 일생 동안 주말부부를 넘어 아예 서로 만날 수도 없는 기러기 가족으로 흩어져 살아야 한단 말인가. 가정을 지키자니 국가를 위해 평생을 바쳐온 제복을 벗어야 하고, 직을 유지하자니 가족이 해체되어야 하는 이 가혹한 모순 앞에 서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로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관의 가정이 정작 이토록 불안에 떨며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그들이 어떻게 온전히 현장 치안에만 집중할 수 있겠는가.

 

더욱 원망스러운 것은 이러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면서도, 정작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삶의 안전망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현실적인 구제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연고지를 완전히 이탈해야 하는 무리한 순환을 지양하고, 동일 생활권 내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범위의 광역 단위 순환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잦은 전학으로 피해를 입는 자녀들을 위해 학기 중 이동을 제한하거나 관사 제공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등의 주거 및 교육 지원 특례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지역 사정에 밝아야만 해결할 수 있는 민생 치안 분야는 전문관으로 지정해 장기 근무를 허용해야 한다. 지역 유착은 투명한 감사 시스템과 과학적인 수사 절차로 해결할 일이지, 사람을 쫓아내듯 돌린다고 해결될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경찰관도 제복을 벗으면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며 부모다. 범죄를 예방하고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사선을 넘나드는 이들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가정의 평온을 지켜주는 것이다.

 

치안 실패의 책임을 현장 공무원들의 삶을 흔드는 방식으로 전가해서는 안 된다. 시스템의 허점은 시스템으로 메워야지, 경찰관 자녀들의 눈물과 가족의 희생으로 메우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행안부는 지금이라도 서둘러 겉만 번지르르한 순환보직 정책의 부작용을 직시하고, 현장 경찰관 가족들이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을 실질적인 삶의 대책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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