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향후 광주 등 서남권에 800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최첨단 반도체 관련 산업생태계가 거의 없는 서남권에 반도체 생산거점을 신규로 조성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아직 조성중에 있지만, AI 메모리의 수요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시기를 10년 이상 앞당기고, 서남권에 입지를 미리 확보해 관련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 용인에서 전력, 용수 등의 한계가 있고, 새로운 수요에 대비하여 생산능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왜 서남권에 신규 반도체 생산거점을 조성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반도체는 기술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고 시장의 적응성이 급속하게 변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기업은 미래 예측에 항상 신중하다. 선제적 투자도 중요하지만 과잉 투자도 위험하기 때문인 것.
실제, 지금은 HBM이 주력 품종이지만 언제 새로운 개념의 메모리가 시장에 출시될지 모른다. 그래서 시장의 추이와 규모 그리고 기술개발 속도를 보면서 설비 능력을 확충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설명대로 신규 생산거점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 서남권보다는 구미 거점의 경북이 최적지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정치 논리를 제외하고 경제 논리로 판단하면 서남권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누가 봐도 이번 발표는국가 균형발전 차원이 아니라, 서남권의 특혜 정책으로 생각될 수 있다.
사실 구미는 대한민국 반도체의 시작이며 역사였다. 1976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구미공단에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를 설립, 당시 불모지였던 반도체 설계 및 공정기술의 국산화에 나선 것이 첫 출발이었다. 국내 최초로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개발과 1982년에 국내 처음으로 구미와 서울을 인터넷망(IPv4)으로 연결한 것 등도 모두 구미가 기반이 됐다. 금성반도체,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대기업들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 또한 기술적 토대를 닦고 인재를 양성했던 것 또한 구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구미의 반도체 역사와 기여 그리고 풍부한 산업토양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신규 반도체 생산거점 사업에 구미가 제외돼 있다. 심각한 절차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반도체 전공정(前工程)이 서남권에 어려운 이유는 여럿 있다.
구체적으로는 1. 해당 입지의 적정성이다.
지금 거론되는 지역은 도로망, 전력망, 상하수도 등 산업인프라를 신규로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구미는 현재 5공단 82만평의 땅 공급이 당장이라도 가능하고, 시장 동향을 살피면서 6공단을 신규 조성하면 반도체 메모리의 수요에는 언제든지 적기 대응이 가능하다.
또 1,200만평 규모의 1-5공단에는 반도체 관련 전후방 산업 등 산업생태계가 조밀하게 형성되어 있어 여건이 더할 나위없이 좋다.
2. 전력 공급능력과 안정성이다. 현재 경북은 전력 자급율 200% 이상을 확보하고 있고 최근에 영덕에 대용량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이 확정되었다. 원자력은 기저 부하로서 안정성 있게 공급받을 수 있으나, 서남권에 집중된 신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는 기후에 민감하여 변동성이 크다. 불안정한 전류는 수천개의 회로에 불량을 일으킨다. 반도체는 전력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 서남권에서 안정적 전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전력저장장치(ESS)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았고, 수조원의 설비 투자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3. 용수 공급능력과 초정수 시설이다. 경북의 구미공단은 낙동강 및 안동댐이 있어 반도체 팹이 필요로 하는 하루 100만톤 이상의 용수를 공급할 수 있으며, 이미 구미공단 지하에 초정수 설비능력 50만톤 이상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호남은 언론에서 용수 부족을 지적하듯이 섬진강, 영산강 및 농업용수 등 용수 공급능력도 해결해야 하고,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초정수 시설을 모두 신설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4. 국제공항의 인접성이다. 반도체는 전량 항공기로 제품을 수출하게 된다. 구미는 곧 개항할 대구경북신공항과 10분 거리에 5공단이 이미 조성되어 있다. 신규로 반도체 생산거점인 6공단을 공항 인근에 조성하면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호남에는 무안국제공항이 입지적인 문제점이 있어서 현재 폐쇄 중에 있다. 반도체는 납기에 민감한 산업이어서, 만약 육로로 호남에서 김해공항이나 인천공항으로 운송하면 납기의 지연과 더불어 이동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5. 서해안의 약한 지반이다. 반도체 전공정은 진동과 수평에 민감하기 때문에 안정된 구조 위에 설치되어야 한다. 불안정한 지반 문제는 안정적인 반도체 수율을 얻기 어렵고, 이는 곧 생산 경쟁력에 직결되는 문제다. 더욱이 이를 보완하기 위한 안정적 지반을 얻기 위해서는 건설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한다. 그렇더라도 약한 지반은 서해안의 구조적 문제로서 어떤 조치로도 해결하기 어렵다.
6. 양질의 인력수급 규모와 질이다. 구미에 1973년 1공단이 준공되면서 전자과 특성화 공고인 국립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에서 600명, 전자과 특성화 공대인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한해에 600명 이상이 배출되어 왔다. 이들이 대한민국 전자산업 발전을 견인하며 주요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오늘 날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산업의 핵심도 이들과 횡적 종적으로 얽혀 있기도 하다. 이외 구미의 금오공대 등 4개 대학, 대구의 경북대학교 등 주요 대학, 대구경북연구원 등 기술 인력의 양성 및 공급 체계가 수십년간 유지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전남대학교는 기계공학과 특성화 공대로서 역할을 수행했으며, 최근의 한전에너지공대는 설립 취지와 목적이 반도체 인력 공급 체계와는 거리가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하듯이 하루아침에 양적, 질적 수준을 감당하기 어렵다.
7. 자칫하면 무리수는 산업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다. 정치권은 서남권이 지금까지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산업정책에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행정지도를 통해 서남권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남권에 반도체 팹을 조성하는 것은 반도체 전체의 국제 경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산업은 전공정 기업과 관련 소.부.장 기업이 클러스터를 구성하여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수많은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로 이루어지는 조밀한 산업생태계이기 때문이다. 현재 서남권에는 반도체 전공정을 수행할 입지도 여건도 경험도 없다. 반도체 전공정을 지원하기 위하여 전국에 있는 소.부.장 기업도 같이 이전을 해야 한다면 “산업생태계 대이동“으로 인한 큰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허허벌판에 나무(팹)는 심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숲(생태계)이 없이는 자랄 수 없기에 다른 지역의 소,부,장 관련기업들을 데려가야 생존이 가능하다. 이들 소,부,장 기업이 있는 지역의 자치단체가 이번 정부 결정을 우려하는 또다른 이유다.
유능한 관료들은 시장 논리와 경제원칙 그리고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이러한 비합리적 의사결정에 나서지 않는다. 정치권의 하명에 의한 무리한 정책 결정과 집행은 반드시 정권이 바뀌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반도체에 수십년간 축적된 교수, 관료, 기업가 등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치 논리에 따라 입지가 지정되는 과정은 많은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전국을 대상으로 입지 선정의 절차를 재공모해야 한다. 어느 지역이든지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하고 객관적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고 결정하는 것이 정의로운 정책 결정 과정이다.
이제 대구경북의 정치권은 더욱 전면에 나서야 한다.
어설프게 대응할 사안이 아니다. 대구경북의 명운이 걸린 부분이기도 하다.
가칭 “반도체 생산거점 경북 유치 위원회”를 구성하고 즉시 활동하여야 하며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외쳐야 한다. 진정한 국가 균형발전은 영호남이 서로의 강점을 상생하는 방법을 찾는 것임을 앞장 서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
이번 반도체 갈등으로 영호남 분열의 폭이 더 확대될지, 아니면 더 좁혀질지 아직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조짐은 분열에 더 쏠린다. 가능성의 예술인 정치가 해결해야 하는 엄중한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