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월)

  • 맑음동두천 20.5℃
  • 구름많음강릉 16.3℃
  • 맑음서울 21.4℃
  • 흐림대전 19.9℃
  • 구름많음대구 20.5℃
  • 박무울산 19.5℃
  • 구름많음광주 19.3℃
  • 흐림부산 19.4℃
  • 흐림고창 17.3℃
  • 구름많음제주 19.2℃
  • 맑음강화 19.0℃
  • 흐림보은 17.5℃
  • 흐림금산 18.6℃
  • 흐림강진군 19.1℃
  • 흐림경주시 19.9℃
  • 흐림거제 17.9℃
기상청 제공

인문학 칼럼

[칼럼] “20년 구미시청 씨름감독의 한(恨)” ··· 김 감독은 왜 오늘도 금오산 현월봉에 오르는가

글 - 이안성 구미일보 대표·발행인

새벽 안개가 금오산 능선을 감싸는 시간, 한 남자가 묵묵히 산길을 오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오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에게 금오산은 단순한 운동장이 아니다.
그곳은 억울함을 삼키는 장소이며, 무너진 자존심을 붙드는 마지막 버팀목이다.

 

20년간 구미시청 씨름단을 이끌었던 김 감독.
구미 씨름의 산증인이자 지역 체육의 전설로 불렸던 그는 민선 8기 출범 이후 임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감독직 사퇴를 요구받았다.
그것도 정식 대화나 예우가 아닌 퇴임 20일 전 전화 한 통, 7일전 ‘내용증명’ 한 장으로 통보받았다고 한다.

 

운동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종이 한 장은 너무 차가운 이별이었다.
수십 년 동안 선수들과 땀 흘리며 전국 대회를 누볐고, 구미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젊음을 바쳤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를 기다린 것은 감사도, 존중도 아니었다.
퇴직금 2,700만 원.
국민연금 월 66만 원.
그 숫자만 놓고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더 가슴 아픈 장면은 따로 있었다.
KBS가 마련한 퇴임식 자리.
그 오랜 세월 지역 체육을 위해 헌신했던 감독의 마지막 길에 정작 구미시 체육회 관계자도, 문화체육과 공무원도 단 한 명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말 이것이 사람을 대하는 행정인가.
행정은 규정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는 사람의 온기로 유지된다.
특히 체육인은 성적 이전에 명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감독에게 자리는 단순한 직함이 아니다.
평생을 바친 삶의 이름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 지도자도 교체될 수 있다.
새로운 방향과 세대교체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시·군의 경우를 보면 감독 교체 과정에서도 최소한의 예우와 배려를 남긴다.
갑작스러운 경질 대신 6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거나, 총감독·고문 등의 역할로 수년간 후진 양성과 선수 관리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오랜 세월 지역 체육 발전에 헌신한 지도자의 공로를 존중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과정 속 최소한의 예우와 존중마저 사라진다면 그것은 행정이 아니라 상처가 된다.


김 감독이 왜 오늘도 금오산 현월봉에 오르는지 이제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그 산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다.
억울함을 삭이는 길이며, 사람에 대한 서운함을 바람에 흘려보내는 길이다.
누군가는 산 정상에서 건강을 얻지만, 그는 정상에서 겨우 마음을 버틴다.
금오산 바위 위에 선 노감독의 뒷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성과가 있을 때는 박수를 보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사회.
헌신한 사람을 아름답게 떠나보내는 문화가 부족한 사회 말이다.
체육도 결국 사람이다.
행정도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한 사람의 20년을 내용증명 한 장으로 끝낼 수는 없다.
오늘도 김 감독은 말없이 금오산을 오른다.
아마 현월봉 정상에 서면 구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것이다.
그 풍경 속에는 자신이 청춘을 바쳐 지켜온 도시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묵묵히 내려올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그 긴 한숨만 가슴에 품은 채.

다만 이에 대해 시체육회 관계자는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
구미시청 운동선수단은 과거 매년 퇴직금을 별도로 적립하지 않고, 해당 연도 종료 후 이른바 ‘13월의 급여’ 형태로 퇴직금을 지급해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이후 관련 법령 개정과 퇴직금 적립제도 시행에 따라 퇴직금 적립 의무가 발생하면서, 그 시점 이후부터는 근로복지공단의 퇴직연금(퇴직금) 적립제도에 따라 매년 1년분의 퇴직금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으며, 관련 규정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청 운동선수단은 전문 운동선수단의 특성상 매년 1년 단위 연봉 협상을 실시하고 있어, 해당 연도 퇴직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선수단에 불이익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선수단 연봉은 경기력과 계약 조건 등에 따라 인상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감액될 가능성도 있어, 선수 보호와 합리적인 보수체계 운영 차원에서 매년 퇴직금을 정산하는 방식을 유지해 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역 체육계 일각에서는 “규정과 절차도 중요하지만, 오랜 세월 지역 체육 발전에 헌신한 지도자에 대한 인간적인 예우 역시 행정이 놓쳐서는 안 될 가치”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