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력은 네트워크 속에서 벌어지는 게임이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권력의 세계에 들어서려는 자는 그 본질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권력은 제일이다.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네트워크(network) 속에서 벌어지는 게임(game)이다. 그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만이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 권력의 법칙 - <로버트 그린>
자유주의 사상가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정치가 아닌 사상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따라서 윤 대통령 탄핵사건이 이제부터 계몽으로 대한민국의 전환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사상이 국민의 머리속에 각인되어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옛부터 정치 지도층의 권력 탐욕과 재물 욕망은 백성들의 근로의욕을 갉아먹는 원흉이었다. 인간이 국가를 통치하는 21세기라고 달라질 것이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그렇다치고 인프라를 거물처럼 촘촘하게 짜는 것은 필요조건 중 하나지만 백성의 근로의욕과 애국심을 버리게 하는 퍼주기식의 무차별적인 복지정책을 지양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고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료와 정치인 스스로 절제하며 탐욕을 멀리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세계 역사를 보면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의 탐욕과 부패는 나라가 패망하는 결정적인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은 좌우 분열로 내란에 맞먹는 대혼란으로 죄 없는 국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이 반국가세력 때문이라면 국민들은 총궐기하여 이들을 척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이든 전쟁이든 당한 만큼 보다 몇 배의 보복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기회를 노려 공격할 것이다. 하지만 분노는 감정적 대응중에서 가장 파괴적이다. 시야를 흐리게 만들기 때문에 “지나친 감정은 이성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직면한 상황을 명확하게 보지 못하면 통제력을 지고 대처할 수도 대응할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보복에는 분노를 적절하게 자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국가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권력은 제일이다.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라는 로버트 그린의 말처럼 이런 ‘권력의 법칙’을 모르고 정치를 하면 자신을 파멸로 만든다.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평가하고 우리가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 역량이 없으면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며,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와 같다. 사냥꾼은 호랑이를 잡는 덫으로 늑대를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장소에 미끼를 놓지 않고 사냥감의 습관과 은신처를 미리 알고 그곳에 맞추어 사냥을 한다. 이는 잡는 대상에 따라 포획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의 주요한 기법중 하나가 기만과 음모는 비밀주의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보복이 따른다. 그래서 권력자는 훗날 자칫 원한이나 모욕을 당한 사람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한 사례를 보자. 기원전 5세기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는 다른 나라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중이는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기다렸다. 어느 날 정(鄭)나라를 지날 때였다. 그곳의 군주인 정문공(鄭文公)이 중이에게 무례를 범했다. 정나라 대부인 숙첨(叔詹)이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분은 진(晉)나라의 존귀한 공자입니다. 대왕께서는 이 분을 우대 하시어 우리 편으로 삼으시면 장차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鄭)무공은 중이의 모습을 보고 숙첨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중이를 모욕했다. 숙첨이 재차 정문공에세 말했다. “전하께서 중이를 우대(優待)하실 마음이 없다면 차라리 죽여서 훗날에 우환을 없애 버리십시오.” 정문공은 비웃듯이 말했다. “저런 사람은 죽일 가치도 없다. 떠돌아다니는 거지 하나 죽여서 뭘 하겠느냐.”
세월이 흘렀다. 중이는 진(晉)나라에 귀국하여 왕위에 올랐다. 이 분이 진문공(晉文公)이다. 진문공은 과거 자신이 곤궁할 때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과 무례하게 대했던 사람을 기억속에 담아 두었다. 물론 정(鄭)나라에 가서 문공에게 모욕을 당한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진(晉)문공은 5만의 군대로 정(鄭)나라를 공격하자 4개성을 빼았긴 정(鄭)문공은 이웃 허(許)나라로 망명했다. 이 사례에서 보았듯이 지금은 상대하고 있는 인물이 나중에는 권력자가 될 수도 있다. 권력은 네트워크(Network) 속에서 벌어지는 게임(game)이며 이 게임에서는 어리석은 뱃사공처럼 강풍에 대한 대비나 목표도 없이 오로지 눈앞의 잔잔한 물결만 보면서 삿대질을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누가 조직을 통제하고 있으며 누가 배후의 실세인지 파악해야 한다.
한 사례를 보자. 17세기 초 리슐리외는 프랑스 정치계에서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고 있을 때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루이 13세가 아니라 바로 왕의 모후였다. 세상은 점점 세분화 되고 있다. 국가조직, 정치집단, 사회구조, 기업경영, 심지어 가정도 1인 핵가족으로 세분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이 좋든 싫든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여기에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지능은 집중의 정도이지 확산의 정도가 아니다.” 베네치아 공작의 궁정에 있는 감옥에 수감된 카나노바는 몰래 땅굴을 파면서 감방이 몇 번 바뀌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오로지 탈옥에만 집중하고 몇년동안 계속 땅굴을 팠고 결국 탈옥에 성공했다. 만일 중지했다면 탈옥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집중은 큰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