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8회

  • 등록 2024.10.28 15:30:06
크게보기

 

 

 

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8회

 

 

 

                                       신인배우(新人俳優)

 

 

왜 내가 여기에 갇혀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지만 내가 왜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를 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갇혀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여기에 가두어 놓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대학 선배인 강시후 씨였다. 영화 촬영기사도 아니고 영화감독도 아닌 백수건달 강시후 씨가 음흉한 발톱을 숨기고 나를 여기에 가두어 놓은 것이었다.

요즘 나는 이상한 꿈으로 식은 땀을 흘리곤 했다. 그것은 강시후 씨가 내 남편이 되어 나를 구박하는 꿈이었다. 내 남편이 된 그는 의처증에 걸려 있었다. 나는 포항에서 조그마한 넥타이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늘 남자 손님을 상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혹시 내가 이러다가 다른 남자와 눈이라도 맞아 좋아 지내지 않을까 의심하게 되었고 그것이 한계를 넘어 의처증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좋아하는 남자를 밝히라면서 손찌금을 하던 그는 어느새 매질까지 하는 폭군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의 매질에 견디다 못한 나는 넥타이를 목에 걸어 숨통을 조여 죽고 싶은 생각을 하다가 집을 뛰쳐나가 하루 이틀 친구 집에서 지내다가 집에 들어 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좋아하는 남자와 지내다가 왔다면서 더욱 광란의 매질을 나에게 퍼부어 댔다.

그날도 나는 그에서 모질게 매를 맞고 시퍼렇게 피멍이 든 채 졸도하여 쓰러지자 그는꾀병을 한다면서 찬물을 한 바케스 들고 와 내 머리위에다 쏟아 부었다. 살을 도려내는 듯한 겨울의 강추위에 나는 정신과 육체가 모두 꽁꽁 얼어 붙었다. 내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옆집에 사는 아줌마의 도움으로 소생은 했지만 나는 이미 정신이상자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물겹도록 극진한 보살핌으로 나의 잃어버린 정신은 가랑비처럼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잠이 깼다. 참으로 이상한 꿈도 있구나 싶었다.

아무리 꿈이지만 강시후 씨가 내 남편이 되다니... 이건 앞으로 닥칠 또 다른 불길한 징후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 온 아침 햇살에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창문은 굳게 닫혀 있다.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 공허할까? 나는 하루에도 이런 생각을 수 없이 해보곤 했다. 삶이 공허하다는 것은 내가 처한 환경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나의 존재가 새삼 의지의 결단에 의해 성취되지 못하고 우물쩍 자기중심성을 상실한 채, 내가 나를 용서하는 후덕한 인품의 소유자가 되지 못한 채, 인간소외를 극복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표류해 가고 있는 것은 왠 일일까?

나는 지금까지 잘 산다는 것은 화가가 그림을 잘 그리듯, 육상선수가 달리기를 잘 하듯이 삶을 잘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풀어나가야 할 삶의 방식은 동물이나 다른 존재자들이 그들의 생명을 단순하게 이어가는 방식과는 다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이 시간만은 인간의 덕(德)이 정욕이나 태만이나 방심 따위에 의해서 가리워짐이 없이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주장한 ‘소크라테스’의 행복론에 마음이 자꾸만 침잠(沈潛)되고 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내가 영혼의 세계, 진리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eros)을 필요로 하는데도 내가 사랑을 상실했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나는 자꾸만 여기에 마음이 몰두해 갔다. 삶에 대한 진지성을 나는 포기하고 싶었다. 더구나 내가 지금까지 쏟아부은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노력의 댓가가 헛되게 돌아갔다는 절망감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 스스로 나를 형성해가며 다듬어 가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나에게는 없어진 것이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보람을 헛되이 자학하면서 나는 내 스스로를 버린 것이다.

나의 삶이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님을 알지만 나는 나의 삶이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의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을 믿으며 오늘을 사는 나이기를 나는 노력해야 하겠지만 오늘 속에 미리 들어온 내일은 나에게 없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이 이렇게 된 이상 내일의 환상은 그리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새처럼 이 장안에 가두어 놓고 무척이나 마음 편하게 살 것이다. 하지만 나를 가두어 둔 이상 그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일 뿐 그 의미가 조그만치도 달라질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미래라는 것은 이 방 밖에 있다. 그것이 나와 상관이 있을 때 나는 이 속박에서 해방되리라. 물론 그것은 기약이 없는 일이다. 세월은 그저 나를 기다림 없이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갇혀 있으면서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조금은 기대를 걸어 본다. 기대를 걸어 본다는 것은 희망이 있는 일이다.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의 균등한 자유와 권리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자유와 권리는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투쟁없이 쟁취하는 자유와 권리는 속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전부다. 나의 육신은 속박되어 있지만 영혼은 자유롭다. 의지를 구사할 수 있는 영혼을 가두는 절대적 방법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니 나를 해친 사람의 균등한 자유와 권리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현재라는 것은 내가 속박되어 있다는 것을 자유롭게, 느긋하게 그리고 누가 어느 무엇이 나의 삶을 이토록 속박으로 몰아 넣었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일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누가 나의 육신을 속박으로 몰아 갔는가를... 그것 때문에 나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 받고자 기다리면서 미소 짓고 사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분노가 풀리기를 기다리며...나는 삐거덕 하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벽에 기대어 살풋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계속>

 

 

 

 

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9회

 

 

 

신인배우(新人俳優)

권우상 기자 lsh8589@hanmail.net
< 저작권자 © 구미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구미일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PC버전으로 보기

사업장주소 : 경북 구미시 상사동로 167-1, 107호(사곡동) Fax. (054)975-8523 | H.P 010-3431-7713 | E-mail : kgnews@hanmail.net 발행인 : 이안성 | 편집인 : 이안성 | 청소년 보호책임자 :김창섭 | 등록번호 : 경북 아 00052 | 신문등록일 : 2007년 8월 7일 Copyright ⓒ 2009 구미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