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명작 단편소설 = 신인배우 연재 제3회
신인배우(新人俳優)
순간 미친듯이 몸을 흔들던 남녀들은 쌍쌍이 엉켜붙어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그의 팔에 안겨 있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얼굴을 부비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의 팔에 안겨졌다고 생각하자 내 입술에 사내의 입술이 포개지는 듯 했지만 나는 그대로 입술을 받아 들였다. 천정에 매달린 사이키 조명이 다시 밝게 켜지고 무대에서는 스탠드의 스폿라이트가 빨간 분홍빛으로 되살아나면서 쿵작거리는 흥겨운 밴드음악과 함께 광란의 춤은 다시 시작되었다. 찬란한 오색 무지개 빛깔은 포말처럼 사방으로 쉬지 않고 이슬비처럼 부셔져 내리고 있었다.
나를 부둥껴 안은 그는 옆에 바짝 붙어서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나는 몸을 흔들면서 둘레둘레 주위를 살폈으나 아는 사람은 없어 다행이라 싶었다. 나는 흔들던 몸을 멈추고 그와 함께 둥근 탁자로 돌아왔다. 막 자리에 앉자 목이 말랐다. 나는 위스키를 한 글라스 가득 따루어 마셨다. 그는 화장실에 간다면서 잠시 자리를 떠났다.
“잠간 실례를 해도 될까요?”
내가 옆을 돌아 보니 젊은 남자였다. 그 남자는 명함을 내밀며 포항매일신문사 연예담당 박성훈 기자라고 하면서 옆 의자에 앉았다.
“신인배우 모집에 합격한 권성희씨죠?”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축하한다고 하면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영화배우로 데뷔한 소감을 말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앞으로 잘봐 달라고 말하면서 배우로 데뷔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위해 어릴 때부터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자랐으며 그동안 여러차례 영화배우의 꿈을 이룰려고 했지만 지방에서는 좀처럼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룬 것 같아요.”
“강시후 씨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그분은 대학 선배로서 대학에서 연극동아리를 할 때 같이 활동한 분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강시후 씨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촬영기사 겸 영화감독이라고 하던데 배우와 감독의 만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운이 좋아 그분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운이 지속되어 앞으로 인기 배우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박성훈 기자의 말에 나는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가 사라지고 조금 있자 화장실에 갔던 강시후 씨가 돌아왔다. 그는 내 앞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루었다.
“강 선생님! 영화 촬영은 언제부터 들어갑니까?”
“늦어도 석 달 전에는 들어갑니다. 며칠 있으면 캬스트 선정 문제로 이번에 합격한 신인 배우들은 서울에 가서 각자 개성에 맞는 배역 선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누가 히로인(주인공)으로 케스팅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때 논의될 것입니다.”
“강 선생님은 이번 신인배우 합격자 중에서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아직 대본이 나오지 않아 누구라고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권성희씨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시면 제가 한 턱 쏠게요.”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개인적으로 날 보자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로비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도 로비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로비라면 어떤 걸 말합니까.”
잠시 말이 없던 그는 입을 열었다.
“딱이 이런 것이 로비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화감독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면서 나에게 위스키를 권했다.
“제가 술을 너무 마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영화배우가 된 기분을 오늘 한번 만끽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너무 취하면 집에도 못갈텐데요.”
“걱정마십시오. 차가 있으니 내가 집에까지 데려다 드릴테니...”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신세라니.. 이제부터 권성희 씨와 나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것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