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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지략과 전투 경험 있는 장군을 육성해야

 

 

 

 

칼럼

 

 

            지략과 전투 경험이 있는 장군을 육성해야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북한 무인기 5대가 휴전선을 남하하여 우리 영공에 침입하자 우리 군은 전투기를 띄우고 포탄 100여 발을 쏘았지만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하자 군의 대응능력에 비난이 적지 않다. 이러한 사태를 빚은 것은 문재인 정권 5년동안 군이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은 것도 영향이 미쳤을 것이다. 군대는 적의 침략을 받았을 때 대응하여 싸우고 국가를 수호하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이다. 따라서 전투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군대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 한국군에는 실제로 전투를 경험한 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이로 봐서도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의사의 경우 의학전문대학원 6년을 바치고 4년의 수련의 과정을 마쳐야 한다. 대학에서는 의학에 대해 의논을 배우고 수련의 과정은 실제로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런데 군대는 전투 경험이 없어도 장군이 된다. 따라서 윤석렬 대통령은 장성들을 우크라니아에 파견하여 전쟁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도 유능한 장군을 육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쟁에 있어 수비는 내가 하기에 달려 있으므로 완벽하게 할 수 있으나, 적에게 이기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옛부터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은 철벽 수비를 한 다음, 적이 약점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사례를 보자. 1943년 1월, 스탈린 그라드에서 승리한 후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던 소련군은 독일 최고 지휘관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교묘한 후퇴작전과 보급로 차단으로 3월에는 우크라이나 동단에서 진퇴양난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소련군을 남북에서 협공하여 격파시키고, 단번에 동부전선의 전황을 만회하려는 히틀러 총통의 제안으로 실행된 것이 ‘세계 최대의 전차전’이라는 불리는 ‘치타델 작전’이다. 군사적으로 이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작전이었으나, 히틀러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즉 작전 개시를 너무 늦추어 소련측이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었다. 이때 소련군이 취한 전법은 견고한 방어 진지에 독일군을 유인하여 지치게 한 후 반격하여 제압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손자의 병법과 같은 것이었다. 방어 부대인 보로네슈 중앙 양집단군의 최전선에는 대전차 호(壕)와 각종 방어 기재, 그리고 다수의 대전차 지뢰를 설치한 저지선을 두었다.

 

그리고 대전차포 등으로 전차전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다수의 대전차 거점을 마련한 방어선인 제2선을 두었으며, 그 다음으로 화포(火砲)로 무장한 화력선(火力線)을 두었다. 독일은 ‘면도칼 한스’라 불리는 ‘클루게’ 원수의 중앙집단군이 북쪽에서, 그리고 명장 에리리 폰 만슈타인 원수의 남방집단군이 남쪽에서 공격을 맡았다. 직접 협공하여 포위하는 기동타격부대는 맹장 모델 상급대장이 인솔하는 제9군과 역전의 용장 호트 상급 대장이 인솔하는 제4기갑군이었다. 양쪽 모두 약 100만 명의 병력과 전차 3천대에 달하는 세기의 대전투였다. 독일군은 공군의 지원을 받으며 남북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미 정보를 입수한 소련군이 고슴도치 같은 견고한 진지를 만들어 놓은 후였다.

 

특히 남측 동단의 프롤홀로카츠에서 독일 친위기갑군과 소련 제5친위전차군이 벌린 전투는 지금까지도 기록에 남을 만큼 장렬한 것이었다. 독일군은 전황이 우세하리라 추측했지만 소련의 종심(縱深) 방어작전으로 둘러쳐진 방어진지를 돌파할 수 없었고,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에 영.미연합군이 시칠리아 등에 상륙했다. 이 사실에 경악한 독일 히틀러가 작전을 중지하고 최강의 기갑군단을 빼내어 시칠리아로 향하게 했으나 결국 독일군은 전세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서 전투에서 패한 독일군은 명장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의 능력으로도 더 이상 전세를 만회할 수 없었다. 또한 동부전선에서는 패주하는 독일군을 쫓아 베를린을 향해 진군하는 소련군의 노도와 같은 진격이 시작되었다.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을 잘 하는 장군은 우선 적이 이길 수 없도록 만든 다음, 적을 이길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라고 했다. 북한은 정규전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방심할 때 기습하거나 내란을 음모하거나 땅굴로 기습하는 전술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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