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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칼럼 = 느긋하게 잠시 미루는 것도 전술이다

 

 

 

칼럼

 

 

                 느긋하게 잠시 미루는 것도 전술이다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가능한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특히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소의 적은 있을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중국의 속담 중에 ‘친구가 많아지면 길이 하나 더 늘지만 친구가 적어지면벽이 하나 더 는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은 쉽게 상대의 화살을 맞을 수가 있다. 이것은 모든 일에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대부이사(大夫夷射)가 황제의 연회에 참석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그는 정신을 차릴 겸 밖으로 산보를 나갔다. 그때 궁궐의 문지기 하나가 대부이사를 보더니 간절하게 말했다. “나리, 남은 술이 있거던 저에게도 좀 주십시오.” 하지만 대부이사는 냉정하게 그의 청을 거절했다, “문이나 지키는 비천한 녀석이 감히 왕이 마시는 술을 넘보다니 썩 꺼지지 못할까.” 대부이사가 자리를 떠난 후 공교롭게도 문지기는 실수로 사발에 담긴 물을 궁궐 문앞의 조그만 웅덩이에 흘리고 말았다. 누가 보면 꼭 소변을 본것처럼 문에 얼룩이 보였다.

 

날이 밝은 후 궁궐문을 나서던 왕이 얼룩진 곳을 보고 문지기에게 물었다. “어젯밤 누가 궐문에 소변을 본 것이냐?” 문지기가 말했다. “대부이사가 이곳에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격노한 왕은 즉시 대부이사를 불렀다. “어젯밤 궐문 앞에 서 있었느냐?” 대부이사가 말했다. “술이 취해 정신을 차릴 겸 밖으로 산보를 나갔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대부이사가 소변을 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처형했다.

이처럼 한낱 문지기도 모욕을 당해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갖은 궁리를 다해 복수를 할려고 대들기 마련이다. 증국번 역시 ‘적을 만드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와는 반대로 누르하치는 왕의 풍모를 갖춘 인물이었다. 도량이 넓었던 그는 과거의 원수지간이라도 넓은 마음으로 포용했다.

 

누르하치가 대군을 이끌고 제길달성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 정보가 미리 적군에게 흘러나가는 바람에 누르하치의 대군이 도착했을 때 성안에서는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맹공을 결심한 누르하치는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적군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이때 적장 악이과니가 쏜 화살은 누르하치의 투구를 뚫고 깊게 박혔지만 악이과니를 노려보며 머리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그리고 화살로 악이과니의 다리를 명중시켜 쓰러뜨렸다. 이 같은 격전속에서 누르하치는 부상을 돌볼 틈도 없이 용맹하게 전투에 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장 낙과가 쏜 화살이 누르하치의 이마에 박혔다. 화살끝이 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었기에 화살을 뽑아내자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대군을 이끌고 성을 공격했다. 누르하치의 용맹함을 목격한 적병들은 모두 겁을 먹고 도망치고 말았다. 성이 함락된 후 적장 악이과니와 낙과는 포로가 되었다. 두 사람은 포승줄에 묶인 체 누르하치 앞에 끌려 나왔다.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누르하치는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양군이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승리를 바라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지난번 전쟁에서 이 두 사람은 비록 적군이긴 하지만 각자의 소임을 다한 것 뿐이다. 그러니 이들을 참형하는 대신 큰 상을 주어 다음번 전쟁에서는 우리를 위해 싸우도록 해야 함이 옳다. 비록 나를 심하게 다치게 한 적군이지만 이들과 같은 용맹한 장수들을 어찌 죽일 수 있겠느냐?” 신하들은 비로소 누르하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악이과니와 낙과는 높은 관직에 올라 무르하치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여기서 우리는 누르하치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작은 원한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짓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도자는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지위가 높을수록 더욱 신중한 태도를 취하며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인 중에는 권력을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가 처벌받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어 씁쓰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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