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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 (權禹相) 칼럼 = 정치의 개념, 한국의 정치 모습은 어떤가?

칼럼

 

 

 

          정치의 개념, 한국의 정치 모습은 어떤가?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정치의 개념(general)은 국가를 다스리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는 중 사람들 사이의 의견 충돌이나 갈등을 해결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독재국가는 차치하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국민이 편안하고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보다 권력을 통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취득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래서 통치자와 국민간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인간은 원래 사회적인 동물이며,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은 이익을 추구하고 욕망을 채우려는 본성이 있는데 이를 방치하여 부패와 혼란이 발생했고, 악한 본성을 고치고 질서를 확립하려면 예와 의를 규범으로 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일찌기 순자(荀子)는 설명했다.

 

 

중국 고사에 ‘명주는 사람 얻는 것을 서두르고, 암주는 권세 얻는 것을 서두른다’는 말이 있다. 또한 ‘군주는 1. 호오(好惡)을 내보이지 말며 2.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 스슨해서도 안되며 3. 백성의 마음을 공략하고 4. 인재 모르는 안목을 키워라‘는 등 최고 지도자의 덕목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도자 중에는 이런 덕목을 갖춘자를 보기는 매우 어렵다. 앙시앵 레짐의 프랑스는 구조적으로 모순이 가득찬 사회였다. 정치는 농민들의 삶을 짓누르는 압박제로 작용하고 있었고, 신분제(1신분 성직자, 2신분 귀족, 3신분 평민)는 1750년 이후 계급 질서에 대한 질곡으로 작용하였으며, 통치체제로서의 절대 왕정은 나름의 개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는 봉건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모순들과 혁명의 기폭제가 된 것은 왕실이 당면한 재정적 위기였다. 루이 14세 통치 말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왕실의 재정적 위기는 미국독립전쟁의 참전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제안된 귀족에 대한 민세 폐지안이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절대 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반동이 일어났다. 결국 이것이 삼부회를 소집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고, 프랑스 대혁명의 막을 올렸다. 나폴레옹은 이 혁명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는 부하인 쥐노에게 말했다. “인간들로 하여금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하는 것, 그게 지도자의 임무다. 지도자는 부하들을 설득시키고 매혹시키며 훈련시킨다. 지도자가 가는 길이라면 지옥이라도 따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이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섬의 아작시오에서 8남매중 둘째로 출생했으며,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여 가장노릇을 했다. 나폴레옹이 포병 소위로 발랑스 라페르 포병대에 부임할 때인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1789년 11월 코르시카의 바스티아에서 민병대를 조직, 정부군에 대항하는 전쟁을 시작으로 남프랑스에서 이탈리아 원정군 포병사령관에 취임하면서 백전백승의 장군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5살 나이에 포병사령관이 된 나폴레옹을 질투한 살리체티의 탄핵으로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한 측근에게 “질주가 멈출 때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간들은 배반한다. 간혹 충직한 인간도 있지만 믿을 사람은 오로지 나 밖에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을 믿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몸에 포탄 파편을 맞아도 지칠 줄 모르는 전투력은 늘 백전백승이었다. 알렉산드리아항 상륙 점령, 피라미트 전투, 맘루크 기병대 대파 승리, 시나이반도 북방의 알 아리시 점령 입성, 아부키트 전투 대승, 로지전투, 밀라노 정복, 아르 콜레 전투, 리버리전투 등 수 많은 전투에서 언제나 승리는 나폴레옹의 몫이었다. 영국과 예집트는 물론 오스트리아도 항복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1806년 1월 1일 황제에 올라 나폴레옹 통치가 시작되자 그는 정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원래 그런 것, 투쟁 아니면 중상, 모략 비방이고, 아부 또는 매수가 아니면 죽음이다.” 한국의 정치 모습도 선거 때가 되면 여기에 매우 닮았다. 서양 속담에 ’Life is a passing shadow ’인생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다’ 진실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라면 개인이나 집단의 탐욕은 물론 상대방의 허위, 비방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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