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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독자기고문] 그게 그런 뜻이었어?

김무경 실로암요양원(장애인거주시설) 원목/상담지원팀장

 

우리 요양원에 시청각장애인 거주인이 있습니다. 다른 시설에서 2011년 12월 우리 요양원으로 옮겨 왔는데, 간단한 신상 기록 밖에는 언제 농아가 되었으며 시각장애인이 되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우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름대로 붙임성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쉰이 넘었음에도 천진난만한 그의 행동은 어떤 때는 우리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 때가 참 많았습니다.

 

아쉬운 대로 수화라도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대화가 되긴 하겠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렇다고 일반 글자를 아는 것도 아니어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어떻게든 대화를 해볼 요량으로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는 알려 할 것 같아 우선 나온 배를 만져 주었습니다. 그 당시는 몸무게가 85kg나 되었기 때문에 배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배를 만져 주면 내가 눈가를 금방 압니다.

 

그리고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알려주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식사 시간에 식당으로 안내하고 생활실의 화장실과 옷장 안내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준비했습니다.

이걸 받아 들더니 가톨릭에서 하는 성호를 긋더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늉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양팔을 벌리고 못을 박는 시늉을 하고 발에도 양쪽에 못을 박는 시늉을 하더니,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합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얘길 하는 겁니다.

 

이렇게 시작된 바디랭귀지로 답답할 때면 내게 시늉을 합니다. 치약이 없다, 칫솔이 다 마모가 되었다, 화장지가 없다, 덥다, 춥다 등등.

 

그리고 식사에 대한 얘기를 언제부턴가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절단되어 숟가락 쥐기도 어려운 이 친구에게 반찬과 밥과 국을 함께 넣어 먹을 수 있도록 배식을 했는데 식사 속도도 엄청 빠르고 맛있게 먹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얼마 전부터 손을 가로저으면서 ‘퇴, 퇴’라고 해서 혹시 매운 게 아닌가 싶어 매운 것을 주지 않기도 했는데 자주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행동을 보다가 혹시 반찬과 밥을 따로 달라는 게 아닌가 싶어 그날 저녁 식사부터 그렇게 시도해봤습니다. 밥, 국 그리고 반찬을 따로 식판에 담아 손으로 만져보게 했습니다. 좋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더니 그렇게 허겁지겁 먹던 식사가 천천히 밥과 반찬과 국을 번갈아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생활실로 안내 하는데 손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는 시늉을 하면서 왼손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최고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그렇게 먹게 해줘서 고맙다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김이 반찬으로 나왔는데 그걸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싸더니 그렇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게 그런 뜻이었어?’

 

저와는 8년을 함께 했습니다. 요즘은 우리 직원 모두 그렇게 대화를 합니다. 본인의 의사도 정확하게 전달하고 우리도 그런 제스쳐를 통하여 의사를 주고받습니다.

 

식사를 많이 안 준다고 투정을 부릴 때가 많습니다. 식사를 많이 안 주는 게 아니라 혈당이 높아서 배가 쉬 고프다 보니 허기가 지는 건데, 달라는 대로 다 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병원치료 더불어 식단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배가 이렇게 많이 나오면 빨리 죽는다는 제스쳐를 알아듣고 작업치료 선생님을 따라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희준씨, 우리와 함께 오래오래 이곳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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