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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군주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칼럼

 

 

      군주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일본 전국시대 오타 도칸은 무장으로 에도 성을 축성한 인물이다. 도칸의 본명은 스케나가(資長)인데 후에 삭발하고 도칸으로 개명했다. 부친의 이름은 스케키요(資靑)이다. 도칸은 어린시절 매우 영리했고 응석받이였는데, 자신의 머리가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자랑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매우 거만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올바른 인물이 될 수 없겠어.” 이렇게 판단한 도칸의 아버지는 스케키요는 도칸을 가마쿠라(鎌倉)에 있는 사찰로 보내면서 말했다. “스님에게 교육을 받아 좀 더 기품있는 인간이 되어라” 수행을 끝낸 도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거만한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실망한 아버지는 어느날 도칸을 불러 장지문을 가리켰다. “저 장지문을 보아라” 도칸의 눈이 장지문 쪽으로 향했다. “저 문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장지문은 곧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저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장지문처럼 성격이 곧아야 하는 것이야. 만약 장지문이 구부러져 있다면 쓰러져버린다.” 아버지의 말에 도칸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우스우냐?” 아버지가 묻자 도칸은 대답했다. “아버지, 저기 병풍 보십시오.” “병풍은 왜?” “병풍은 몇 겹으로 접혀 구부러져 있습니다.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병풍이 구부러져 있지 않고 똑바로 만들어졌다면 당장 쓰러져버릴 것입니다.”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아들의 반박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다. 도칸은 말했다. “장지문이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위 아래 홈이 패 있어서 거기에 자신의 몸 일부를 집어 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장지문이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위와 아래에 패 있는 홈에 의해서 지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의 거만함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는 이번에는 종이에 글을 써서 도칸의 책상 앞에 붙여 두었다. 「교만한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아버지는 도칸이 이 글을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을 고쳐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출하고 도칸이 돌아오자 책상 앞에 붙어 있는 글을 훑어보고 붓을 들어 글을 적더니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다시 도칸의 방에 들어가 자신이 붙여 놓았던 종이를 보자 다른 글이 첨부되어 있었다. 「교만하지 못한 자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후 아버지는 자신의 도칸을 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칸의 거만함을 바로잡겠는 생각을 포기했다. 성인이 된 도칸은 에도 성의 성주가 되자, 부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 한 측근이 일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시도 옲으면서 풍류를 즐기라고 하면서 사람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하였지만 도칸은 무사에게 필요한 것은 무술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냥을 하다가 비가 내렸다. 급히 농가의 처마밑으로 몸을 피한 도칸은 소리쳤다 “빨리 성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비옷을 빌려주게“ 그러자 처녀가 나와 매화 나뭇가지를 들고 나왔다. ”부끄럽습니다” 여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매화 가지를 도칸에게 건네자, 도칸은 어리둥절 했다. “비옷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매화 가지를 주다니 정신병자인가?” 도칸은 비를 맞으며 성으로 돌아와 측근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시(詩)에 능통한 특근이 말했다. “옛 시에 ‘백화가 만발해도 매화 열매 하나 여물지 않는구나! 란 그 시를 알고 매화 가지를 내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도롱이를 ‘미노’라고 하고 열매도 ‘미(實)’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화가 만발 해도’를 다른 집에는 흔한 도롱이에 비유한 것이고, ’매와 열매(미)가 하나 여물지 않는구나‘는 우리 집은 도롱이(미노) 하나 없다’에 비유한 것이다. 즉 다른 집에는 흔해 빠진 도롱이가 우리집에는 없으니 죄송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들은 도칸은 깜짝 놀라면서 여자의 속뜻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무식함을 깊이 반성했다. 그날 이후 시를 공부하기 시작한 도칸은 일류 시인이 되었을 뿐만아니라 문학 등 여러 분야에 공부를 하여 폭 넓은 지식도 갖추게 되자,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토(京都)에서 수많은 문화인들이 찾아와 에도 성은 도시의 문화가 교류하는 거점이 되었다. 군주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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