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최고의 걸작 단편소설
위대한 승리
권우상
드디어 탐승시간이 됐다. 애기愛機의 점검을 하고 있으니까 마음의 불안이 점점 엄습해 왔다. 내가 과연 살아서 돌아올 것인지 아닌지 영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고 말 것인지 불안한 마음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나는 애써 이 불안을 떨쳐 버릴려고 무진 노력했다. 이 전쟁에서 우리 미군이 승리를 한다면 나는 내 목숨 하나 던져도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종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고 엔진 시동의 지시를 기다렸다. 기상불량으로 임무중지의 가능성이 있다는 전달에 나도 모르게 분통이 터졌지만 재차 임무를 감행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Get ready to scramble! - 출격준비! -
이번 전투에 내가 참가한 것은 월남전 최초로 한국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차출되어 미공군에 배속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한국 공군 최초의 펜텀기 조종사로 미군과 함께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국이라는 내 조국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미국이라는 남의 나라를 위해 '내가 왜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라는 의문의 꼬리표가 머릿속에 맴돌기도 했지만 미국이라는 자유우방 국가와 함께 공산주의를 물리친다고 생각하자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은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됐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은 내 손을 굳게 잡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 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해 싸워 주기 바란다고 하시면서 당부하던 말씀을 상기하면 이번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혹여 내가 죽을지언정 조금도 후회가 없었다. 터빈의 회전음이 서서히 커지자 기체機體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굉음을 내면서 캐터필드로 이동했다. 갑판상의 제트분사 편류판이 올려지고 1번기가 사출됐다. 4대의 캐터필드가 차례로 뽀얀 기체를 쏘아냈고, 마침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캐터필드에 연결되자 100%로 출력을 높여 계기를 점검하고 아프터버너(후연기)를 점화하자 캐터필드의 미군 장교가 경례를 했다. 나는 오른 손을 들어 답례를 하고 발진하자 쾅하는 충격과 함께 나는 수백 피트에서 2백 노트 가까운 속도로 하늘로 상승했다. 급히 4백 노트까지 가속하자 급유기를 향해 다시 고도를 높혔다. 두 마리의 잠자리가 교미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공중 급유가 끝나자 공격대는 편대를 짜고 ‘에가드’ 소령이 목표까지의 코스를 산출하기 시작했다. 약 15분 정도 통킹만 상공을 선회한 후 홍하紅河에 가까운 연안에 접근하자 적군의 레이다가 필사적으로 탐색을 시작하고 있었다.
‘브라이언’과 나는 고도를 높여 A - 6와 A - 7로 짜여진 공격대 주력의 상공으로 나아갔다. 내 뒤 후석에 탄 안광희 대위가 눈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대기가 폭격당하는 것은 애석한 일이라고 감상적인 말을 했다. 에메랄드빛 푸른색으로 뒤덮힌 계곡을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메콩강이 아름답게 빛나고 마을의 지붕이 반짝반짝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공격할 목표물에 접근하자 공격대가 흘러가듯이 그쪽 상공으로 기수를 향했다. 항공모함 단장이 공격대에게 목표를 지나쳤다고 무전으로 전해오자 전기前機가 일제히 서西에서 동東으로 돌면서 개미의 행렬처럼 목표물을 향해 접근했다. 머리위에서 선회하는 우리들의 사이를 누비고 적군의 대공포화가 우리를 향해 무수히 작렬했다. 우리가 선회하는 반대편에 있던 ‘블랙번’ 소령의 탐승기에 85밀리탄이 명중되어 한쪽 엔진이 고장났고, 적군의 MiG - 21기의 공격을 받았지만 낙하산으로 무사히 적지에서 벗어났다.
제1진이 주목표물을 격파했으므로 항모단장은 다른 항공기에 대해 제2의목표물 공격을 명령했다. ‘브라이언’과 나는 조차장에 인접한 대규모 적군의 보급품 야적장을 공격 목표물로 정했다. 우리는 간격을 좁혀서 파이팅윙 편대에 의한 공격을 하기로 하고 서로 교대해 가며 폭탄을 연속 투하했다. 우리들이 롤오버하는 순간 샘미사일 2발이 발사됐지만 유도탄은 추적에 실패하여 우리 바로 옆을 지나쳐갔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목표물은 거대한 연기와 파편 덩어리 속에 묻히고 있었다. A - 7기의 TNT 1천 파운드 폭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명중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조금 더 롤오버해서 붉은 벽돌의 높은 건물을 공격 목표물로 선택했다. 폭탄을 투하하고 목표물 상공에서 상승하면서 나는 어깨 너머로 해서는 안될 전과戰果를 확인하려는 잘못을 범했다. 내 머리는 아래 방향으로 고정돼 있었다. 이때 믿음직스런 요격기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권소령 7시 방향에 MiG - 17 사격중..”
두 대의 MiG - 17이 브라이언의 팬텀 우측 약 5백 피트에 있었고. 나는 그로부터 정면 약 1천 피트 상공에서 다음 목표물을 노리며 비행하고 있었다. 갑자기 좌측으로 급반전하자 MiG - 17이 후방으로 돌아 들어와 사격을 개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37미리 기관포에서 연발로 토해 내는 탄환은 주먹만한 크기였으며 포구砲口는 마치 축구경기장 정도로 길게 보였다.
직감적으로 나는 적기敵機를 향해 브레이크(급선희) 하려고 생각했다. 이틀 전에 내가 브레이크(적기나 유도탄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최대 선회율로 급선회 하는 것) 했을 때 적기敵機는 내 뒤로 바싹 따라 붙었다. 힐끔 미그기를 보자 고속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조종간을 움직이기에도 힘이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적기를 향해 브레이크(급선희) 했다. 예상대로 미그기 조종사는 역부족으로 조종간을 움직이지 못하고 내 머리 위 2시 방향에서 오버슈트(목표를 지나치는 것)했다. 하지만 약 1천5백 피트 떨어져서 따라오던 적기는 기수를 들어 버디칼롤(수직 상승하여 회전하는 것)로 내 애기愛機의 옆구리로 파고 들었다.
“권소령, 그쪽 6시 방향의 적기는 내게 맡겨 주시오”
라고 영어로 하는 ‘브라이언’ 말이 들렸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맡겨 버리고 오버슈트 한 미그기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이렇게 해서 이쪽에서 사이드 와인더를 발사했을 때 적기는 최단 사정거리 안에 있었지만 유도탄이 따라 붙었을 때는 전방 2천5백 피트로 벌어질 정도로 적기敵機는 고속을 냈다. 물론 사이드 와인더는 적기를 산산조각으로 날려버렸다. 이 교전 소요시간은 약 15초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이제까지 두 번에 걸쳐 ‘브라이언’은 미그기를 유인해 내 앞으로 끌어내 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해치울 차례였다.
“브라이언, 이번에는 그쪽 차례다. 내가 놈을 끌어내 줄게 처치해.”
라고 소리치며 나는 밑으로 향해 선회했다.
“이 놈을 처치해, 이봐! 브라이언, 어떻게 됐어?”
“권소령, 애는 셨지만 이쪽도 겨를이 없습니다. 적기 두 대에 쫓기고 있습니다.”
나는 서둘러 뒤따르는 적기를 떨쳐버리려고 6백 노트로 속도를 높혔다. 우측을 보니 ‘브라이언’ 같은 방법으로 두 대의 적기敵機를 떨쳐버리고 급히 돌아와 전투 대형으로 다시 정열했다. 요격기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브라이언’이었다. 아직도 연료는 충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중앙보조연료탱크의 이송이 끝날 무렵이었다. 기수를 틀어 수직상승으로 고도 1만5천 피트에 이르렀을 때 다시 전투대형으로 돌아왔다. 이때 ‘코넬리’와 ‘브론스키’가 MiG - 17을 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연신 기관포는 무섭게 불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윽고 MiG - 17은 화염에 쌓였고 기체가 지면에 충돌하기 전에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다.
우리는 고속비행을 하면서 중앙보조연료탱크의 투기投棄에 관해 걱정했다. 그것은 고속에서 투기할 경우 보조연료탱크가 안정판에 충돌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 끝에 결국은 이 탱크를 투기했으나 다행히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때 눈 아래서는 박모薄暮(땅거미)에서 초계 그대로의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8대의 MiG - 17이 방어원형진防禦圓形陳을 짜고 있는 가운데 3대의 F - 4기가 섞여 있었다. 우리 편이 저들의 전술에 말려들고 있는 것은 잘하는 짓이 아니다. 3백 50노트까지 속도를 낮춘다는 것은 마치 나를 격추시켜 달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브라이언’에게 엄호를 부탁하고 선회를 시작했다. 내가 막 기수를 낮추려는 찰나에 원형진에서 갑자기 튀어 나온 팬텀기가 아슬아슬하게 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안대위, 112호기에는 누가 타고 있지?”
문제의 승무원은 ‘딤’ 중령과 ‘리오폭스’였다.
“앗, 저것 봐”
나는 정신없이 큰 소리를 질렀다. 좌선회左旋回 중인 ‘딤’ 중령의 팬텀기 후방 약 2천 피트에 MiG - 21기 한 대가 보였다. 더구나 ‘딤’ 중령이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은 또 다른 MiG - 17 한 대가 옆에 나란히 비행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추적 중인 두 대의 미그기가 7시 방향에 있었는데 가장 위험한 존재는 측면에 있으면서 지금이라도 당장 덤벼들 것 같은 MiG - 17이었다. 급히 ‘딤’ 중령에게 회피기동回避機動을 요구하자 거의 동시에 미사일 발사의 톤이 들어왔다. 그러나 ‘딤’ 중령의 F - 4는 아프터버너(후연기)를 사용중이어서 이곳에서 사이드 와인드를 발사하면 틀림없이 ‘딤’ 중령의 팬텀기를 추격하게 된다.
나는 ‘딤’ 중령에게 오른쪽으로 반전反轉해 미그기를 따돌려 우리 사이드 와인드가 미그기를 추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를 유지하도록 건의했다. 하지만 ‘딤’ 중령은 내가 추격중인 미그기에 관해서 말하는 것으로 잘못 착각해 그대로 비행을 계속했다. 아마 ‘딤’ 중령은 옆에 있는 미그기를 인지認知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쇼타임 우(右)로 반전하라! 안하면 당한다.”
나와 안광휘 대위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렸다.
“7시 방향에 MiG - 17 4대가 따라 붙고 있다.”
이 4대는 사정거리 밖에 나가 있었지만 ‘딤/ 중령기의 선회旋回에 맞춰 점차로 거리를 좁혀 왔다. 그 사이 감시를 계속하던 안광희 대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권소령, 2시 상공을 봐요.”
내가 쳐다보자 번쩍하는 섬광 두 개가 확인됐다. 고도高度이기 때문에 기체는 보이지 않았고 단지 섬광閃光으로만 보였다.
“그 밖에 또 MiG - 17이 있다니.. 절대 그럴 리가 없어”
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의 생각이 적중했다. 섬광으로 보인 것은 MiG - 17이 아니라 MiG - 19였다. 그 미그기가 선회하면서 나에게 기관포 사격을 가해왔다. 사격을 피해 내가 반전反轉하자 그들은 나의 6시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내가 공격 목표로 하는 상대는 10시 방향이 됐고, 앞서가는 ‘딤’ 중령기와의 간격도 충분히 벌어졌다. 그러나 사정거리 밖에서 나를 추적하기 시작한 미그기 중 한 대가 사격거리 위치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내가 행한 드문 일 가운데 하나는 그 시점에서 5백 50노트의 속력을 유지한 것이었다. 내가 좁게 선회하지 않았다면 미그기는 쫓아올 수 없었고, 5백 6노트로서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딤’ 중령기와 추적중인 미그기의 후방에 머물기 위해 나는 선회하지 않으면 안됐던 것이다. 나는 안광휘 대위에게 뒤따라 오는 미그기에 주의해서 거리를 좁혀오면 즉시 알려 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적기敵機가 거리를 좁혀와 사격을 해 옴으로 간격을 벌렸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눈 깜짝할 사이 몇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계속해서 ‘딤 ’중령에게 우右로 브레이크를 요구하고 있을 때 안광희 대위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권소령, 상공 9시 방향!”
두상頭上 4천 피트에서 4대의 MiG - 21이 눈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딤’ 중령기가 브레이크를 했다. 유도탄의 톤이 들렸다. 사라지고 또 다시 들리고를 몇 번 반복 했다. 틈을 주지않고 나는 방아쇠를 조였다.
“폭스 투....”
‘딤’ 중령기의 후방석에 탄 ‘리오폭스’가 이때 처음으로 미그기의 존재를 알아차렸고 그 미그기가 격추되는 것을 목격했다. 유도탄은 미그기의 동체를 뚫고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미그기 조종사가 F - 4의 후방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모습이 보이자 깜짝 놀랐다. 북한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월남전에 북한군이 MIG를 몰고 있다는 말은 간간이 소문으로는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좌左로 급선회 하여 날개를 숙이면서 그와 물리는 기동을 계속했다. 유도탄이 MiG - 17에 명중한 직후 상공의 MiG - 21 4대가 또 다시 습격해 왔다. 아마 전우戰友를 잃어 피가 끓어오른 모양이었다. 4대가 선회를 개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급선회로 상대를 떨쳐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딤’ 중령기는 똑바로 해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온통 미그기 투성이었고 팬텀기는 그림자도 없어 나도 방향을 동쪽으로 향했다.
그 사이 나와 함께 전투에 나선 ‘코넬리’ 대위는 그날 두 번째의 미그기 격추를 기록하고 있었다. A - 7 조종사 한 사람이 폭탄투하 직후에 미그기 출현 통보를 듣고 호기심으로 미그기를 한번 보고자 되돌아섰다. 그러자 MiG - 17 두 대가 즉각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대를 격추시킨 ‘코넬리’ 대위는 A - 7 조종사에게 A - 7로는 도저히 게임이 안되니 속히 이탈하라고 말했다.
A - 7은 이 말에 따라 나는 급히 이탈을 시도했다. 하지만 또 다른 미그기 2대의 추격을 받기 시작했다. ‘코넬리’ 대위가 그 중 하나를 미사일로 다시 격추하자 A - 7은 그 틈을 타서 해상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다른 F - 4의 ‘슈만’과 ‘그랜쇼’는 ‘코넬리’ 대위를 쫓고 있는 MiG - 17을 목격했다. 그리고 즉시 고각高角에서 사이드 와인더를 발사했지만 유도탄은 목표물인 적기에서 빗나갔다. 그렇지만 ‘코넬리’기의 후방에서 미그기를 쫓아내는 효과는 있었다. ‘코넬리’ 대위는 기수를 들어 버티칼(수직 상승)로 들어갔는데 바로 그때 ‘[리오폭스’가 소리쳤다.
“코넬리 9시 방향에 MiG - 17이다.”
눈깜짝할 사이에 F - 4와 MiG - 17이 교차했다. ‘코넬리’ 대위는 너무나 가까이 접근해서 그 미그기 조종사의 얼굴이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가도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만치 뇌리속에 파편처럼 새겨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종사는 소련군이라고 하였다. 그러지 나는 소련군도 참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작 전쟁의 당사자인 월남군과 월맹군은 보이지 않고 월남쪽에서는 미군과 한국군이, 월맹쪽에서는 소련군과 북한군이 나와서 싸우다니.. 세계 어디에 이런 대리전代理戰이 있나 싶었다.
그후 두 대는 공히 1백75노트로 감속했고, 미그기는 교전을 포기하고 날아가 버렸다. ‘코넬리’ 대위도 저속 상태에서 적기를 추격하는 어리석음을 피해 그곳에서 이탈했다. ‘코넬리’가 해안으로 향하고 있는 ‘사이슈만’과 ‘그랜쇼’의 팬텀기는 후방에 달라붙은 미그기를 떨쳐버리려고 애쓴 끝에 겨우 이를 따돌렸다. 그런데 계기計器와 항법장비가 고장이 나서 고도 50피트 상공을 5백50노트로 비행하는 상태가 됐다. 지문항법(지상의 물표를 참조해 비행하는 것)으로 비행하려고 해도 적당한 물체의 목표가 없었다. 분명히 해안 쪽으로 향하고 있으리라 판단했는데 마침내 눈 앞에 하노이 교외郊外의 멋진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급히 반전反轉하는 도중 항법장치에 셈 레이다의 강한 방음防音이 들렸다. 12시 방향을 내려다보자 SA - 2가 정면으로 날아왔다. ‘슈만’ 대위는 위축되는 기분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참다가 브레이크 했다. 미사일은 빗나갔지만 다시 벌린 공중전에서 ‘슈만’ 대위는 MiG - 17을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다. 겨우 한숨을 돌리자 나는 안광휘 대위에게 말했다.
“아직도 연료는 충분하고 미그기는 골라 잡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있는데 이대로 돌아가긴 아깝구만 귀환은 歸還은 노우...”
이때까지의 교전에 소요된 시간은 모두 합해도 불과 2분 정도였다. 공중전의 전투는 이처럼 아주 짧은 시간에 승패가 이뤄지는 것이다. 숫자적으로 적기는 압도적으로 많지만 우리 전투편대는 오합지졸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 이대로 계속 싸울 수 없어 아무래도 귀환하는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고도 1만 피트로 해안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전방 약간 낮은 고도로 이쪽으로 향해오는 전투기 한 대를 확인했다. 적기敵機 MiG - 17이었다. 나는 안광휘 대위에게 가장 가깝게 접근해서 미그기를 앞세우고 상대가 우리 6시 방향으로 돌아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능한 옆으로 유인할테니 주시하라고 지시했다.
이것은 내가 미국 ‘미라마’ 공군기지에서 훈련 받을 때 미그기의 성능에 가까운 A - 4기에 대한 기체 성능을 반복해서 교관에게 들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칫 큰 잘못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얼른 생각해 냈다. A - 4에는 기관포가 없었던 것이다. 미그기의 기체 전체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났다. 주먹만한 크기의 탄환이 나의 애기愛機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뒤로 지나갔다. 나는 수직상승으로 적기敵機의 추적을 따돌리도록 조종간을 힘껏 잡아 당겼다. 6G로 당겨 올림이 끝나자 나는 상승하는 기체機體의 상체上體를 틀어 아래쪽의 미그기를 보려고 했다. 당연히 적기敵機는 수평선회로 들어가든지 이제까지처럼 그대로 이탈해 나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좌석의 어깨너머로 돌아본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불과 90미터 뒤에 미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그기 조종사가 착용하고 있는 가죽제 비행모, 비행안경에 스카프 그리고 싸워서 죽겠다는 필사必死의 표정까지 그의 모습이 손에 잡힐듯이 뚜렷이 보였다. 조종사는 북한군으로 보였다. 내가 두 번째로 본 북한군이었다. 나는 갑자기 맥이 빠지면서 위장胃腸 근처가 움추러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급상승은 8천 피트까지 달했지만 적敵의 눈에는 조금도 불안의 빛이 없었다.
나는 아프트버너를 써서 상대를 때어 놓으려고 했으나 힘이 너무 가해져 상대의 머리 위에 위치하고 말았다. 그대로 정점에서 조종간을 당기기 시작하자 적기敵機는 기관포 나에게 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나는 두 번째의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상대가 예상하는 비행 경로를 따르도록 틈을 준 것이었다. 나는 롤을 하면서 반대편으로 급히 빠졌다. 하지만 적기敵機는내 뒤에 바짝 따라 붙고 있었다. 분명히 북한군의 적기敵機였다. 나는 머리에 피가 끓어 올랐다. 반드시 격추시켜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공중전에서 후미後尾를 잡힌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안광희 대위에게 급히 말했다.
“저 북한놈이 따라 오는데 슬슬 처치해 볼까. 어차피 죽을 목숨 이대로 죽을 순 없자나..”
북한군이 몰고 있는 미그기를 4시 방향에 두고 나는 가속加速을 얻기 위해 기수機首를 낮추었다. 그러자 그대로 적기敵機도 기수機首를 낮추고 선회에 들어갔다. 순간 나는 갑자기 기수를 들어 올려 롤오버 하여 상대의 5시 방향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위치는 너무 가까워서 유도탄을 발사하기에는 각도가 너무 컸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나에게 유리하게 된 것은 분명했다. 틀림없이 나는 상대(북한군이 조종하는 미그기가) 나의 전술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전의 불안감을 틀어내고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기수를 낮춰 최대 방향타를 유지하며 유도탄 발사에 대비하려 했지만 이미 그때 敵機적기는 내쪽을 향해 기관포를 퍼부어댔다. 아무래도 이 북한 놈은 따라붙는 것뿐만 아니고 전투에 임하는 솜씨도 상당히 공중전에 베터랑인 것 같아 보였다. 상대 敵機는 내가 시도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이쪽을 오버슈트에 몰아넣는 양상이어서 우리들은 전형적인 로링써서스에 들어갔다.
미국에서 훈련중에서도 나는 같은 상황의 모의 공중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만약 상대가 기수를 지나치게 들면 정속定速 강하해 적기敵機가 반전反轉으로 사정거리 인에 들어 오기전에 상대 적기敵機의 6시 방향에 돌아드는 것이었다. 비행속도를 2백 노트로 떨어뜨리자 나는 당겨 올릴 시기라고 생각했다. 톱건(Top Gun : 미해군전투기병기학교의 속칭)의 교관인 ‘프로스트’ 대위는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탈하는가를 나에게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프로스트’ 대위는 이제까지 만난 가장 베터랑 전투기 조종사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미그기의 우세한 선회반경과 선회속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敵機는 공중전에 유리한 위치를 지속했다. 하지만 기수를 약간 지나치게 들어 올린만큼 이틈을 이용해 나는 돌아서 들어갔다. 거의 1백80도 방향에서 상대보다 3.5킬로미터 앞 섰고 미사일 사정거리 밖에서 속도는 6백 노트에 달했다.
이렇게 해서 파워(에너지)를 회복한 나는 기수를 60도로 들고 수직선회에 들어가 미그기와의 난전(難戰 : 난이도가 높은 전투)에 도전했다. 그러자 미그기도 뒤따라 왔고, 다시 팬텀기의 상승력에 의해 상대를 떼어 놓았을 때 상대 적기敵機는 기총사격을 가해왔다. 이와 동시에 몇 초전에 벌어졌던 첫 교전과 똑같이 우리는 롤링써서스에 들어갔다. 재차 유리함과 불리함이 찰라에 교차된 전투 끝에 적敵과 우리는 서로 떨어졌다. 거기서 돌진해 다시 한번 속도를 회복하려고 했을 때 안광희 대위의 목소리가 인터컴을 통해 들려왔다.
“권소령, 컨디션은 좀 어떻습니까? 북한 빨갱이 놈들도 꽤 잘 싸우던데.. 이쯤하고 굳바이하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불끈 화가 치밀었다. 북한 빨갱이 놈이 내 공격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두 번이나 선수를 친 것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조금 더 참게, 어쨌던 북한 빨갱이 놈을 처치해야겠어..”
“좋습니다. 해치워 버리죠. 내가 뒤에 있지 않습니까?”
안광휘 대위는 세 번째로 내가 상대를 찾아 기수機首를 올리는 사이 열심히 적(敵) 미그기의 모습을 쫓고 있었다. 공중전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적기와 대결할 때 후방석에 확실한 감시의 눈초리가 빛나고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든든한 것이었다. 이런 마음은 실제로 공중전을 해본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면 모른다. 이제까지 미군전투기 조종사가 수직 비행으로 싸우는 소련제 미그기를 만난 것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더구나 소련제 미그기를 몰고 있는 북한군 또는 소련군과 싸우는 것은 한국 공군인 나로서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이를 다른 말도 표현하면 차이나반도에서 공중전에서 당사자인 남南의 월남과 북北의 월맹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남南에서는 미군과 한국군이 연합하고, 북北에서는 소련군과 북한군이 연합하여 싸우는 모양새였다. 적(敵)은 대부분의 경우 평면(지상)에서 싸우거나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도주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나는 정면대결로 MiG - 17과 맞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간 옆으로 치우쳐 있어 적기敵機를 기관포를 쏘지 못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풀엎(Full - up)해 수직비행으로 들어갈 때 몇 피트 간격을 두고 다시 적기(MIG-17)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나는 과거에 영국의 처칠 수상이
‘전투에 있어 적敵이 내가 전문으로 하는 수단에 당하지 않을 때 대부분의 경우 과감하게 기수機首를 쓰는 게 좋은 방법이다.’ 라고 말했다는 기억이 문득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때 문득 나는 최후의 수단을 생각해 냈다. 거기서 단번에 적기쪽으로 향하자 슬롯틀을 쑥 당겨서 출력을 아이덜(최저)로 하고 동시에 스피드 브레이크를 펼쳤다.
처음으로 적敵의 미그기가 내 앞으로 불쑥 튀어 나왔다. 그 순간 내 팬텀기의 기수는 60도나 들어 올려지고 속도는 1백50노트로 감소됐다. 즉시 전투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아프터버너를 점화시켰다. 순간 놀란 적기敵機는 내 머리 위에서 배면背面을 들어내는 형태의 롤엎(횡전)을 시도했다.
나는 주익主翼에 스포일러가 있는 F - 4의 실속을 막기 위해 라다(방향타)만을 써서 미그기 후방 아래쪽의 사각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적의 미그기는 반전하기 위해 날개를 급경사 시켰을 때 일시적으로 실속失速한 듯 기수를 떨구고 내 정면으로 나왔다. 하지만 내가 유도탄을 발사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이 상대로 적의 MiG - 17과 맞붙기에는 불리했다. 1백50노트의 저속으로는 순간적으로 전세戰勢가 역전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 적기敵機는 무엇인가를 주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차후에 판명된 일이지만 이때 상대 적기는 지상요격관제소 관제관으로부터 귀환歸還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거부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량이 뛰어난 미그기 조종사가 북한 공군의 김일한 대좌라는 것도 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는 미군전투기 6대의 격추기록을 가진 북한 공군의 베트랑 전투기 조종사였다.
적의 미그기는 일단 기수를 들어 상승 후 급강하 했다. 나도 그 뒤를 쫓아 급상승 후 강하했다. 지표의 반사열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이드 와인더에 있어 급강하 시의 추격은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폭스투를 콜하면서 유도탄을 발사했다. 북한 공군 김일한 대좌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내가 발사한 유도탄은 레일을 일직선으로 적기인 MiG - 17로 향해 돌진했다. 희미한 섬광이 보였을 뿐이므로 나는 틀림없이 유도탄이 표적을 놓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계속 마지막 남은 유도탄을 발사하려는 순간 갑자기 화염이 일어나며 검은 연기가 MiG - 17에서 뿜어 나왔다. 내가 발사한 유도탄이 하치의 오차도 없이 명중된 것이었다. 이쯤 되면 북한공군 김일한 대좌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의 MiG - 17은 조종불능상태에 빠진듯한 흔적도 없이 그대로 급강하를 계속해 45도 각도로 폭음爆音을 동반한 굉음轟音과 함께 땅바닥으로 내려가 꽃혀 충돌하면서 기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권소령, 10시 방향에서 적기 MiG - 17!"
안광희 대위는 감시의 눈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때 속도는 5백50노트였으므로 적기(미그기)를 향해 기수를 들면서 안광희 대위에게 말했다.
“이 놈으로 여섯 번째다. 내 솜씨를 한번 더 보여 줘야겠다.”
이쪽의 전투를 지켜보던 ‘코넬리’ 대위가 소리쳤다.
“권소령, 이탈해, 빨리 이탈해.. 7시 방향에 MiG - 17 4대가 더 있다.”
내가 문득 전방을 보니 ‘코넬리’ 대위의 팬텀기는 기수를 이쪽으로 향한 자세에서 유도탄을 발사했다. ’코넬리‘가 실성해서 우리를 죽이려드나 하고 생각했다. ’코넬리‘ 대위의 팬텀기에서 떠난 스패로 유도탄은 우리 수직미익을 스치듯이 지나가 추적해 오고 있는 MiG - 17 4기 편대의 한복판으로 날아 들었다. 효과는 100%였다. MiG - 17 기체는 돼지의 몸에서 튀어 나오는 창자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헤냈다. 다섯번 째 놈을 해치웠다. 이제 빨리 도망치자.”
우리는 선회해서 ‘코넬리’ 대위의 팬텀기와 편대를 짜고 곧바로 해안으로 향했다. 좌측 하늘은 85밀리 대공포의 탄막으로 밤하늘처럼 어두었다. ECM 장비가 샘 미사일 접근을 경고했고. 두 대의 샘 미사일이 이쪽으로 돌진해 왔지만 우리는 잘 피했기 때문에 유도탄은 유리의 코 앞을 스쳐갔다. 다음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다. 대공포화가 잠잠해진 것은 무엇인가 수상했다. 그 이유를 안광휘 대위가 알려줬다.
“권소령, 미그기가 쫓아 옵니다.”
기수를 들자 바로 전방에 적기 MiG - 21이 있었다. 내가 유도탄을 쏘려했지만 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쏠 수가 없어 그대로 스쳐 지나갔는데 캐노피 가득히 적의 MiG - 21 모습이 보였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틈도 없이 적의 MiG - 17이 아주 가까운 거리로 우리 옆을 통과했고, 다른 한 대가 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우리에게 기관포가 있었다면 이때 세 대를 격추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몹시 아쉬웠다.
나는 기수를 들어 브레이크 아프터버너를 사용해 위기를 벗어났다. 남단에 접근하자 샘콜이 들어왔다. 우측을 보니 SA - 2가 일직선으로 덮쳐왔다. 반사적으로 피하려는 순간 샘 미사일이 작열했다. 폭발의 충격은 그다지 강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머리가 몸속으로 쑤셔 박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 번 더 가까운 거리에서 샘 미사일의 폭발을 경험했지만 기체에 손상은 없었다. 나는 즉시 계기비행으로 들어가 각 시스템에 기능이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샘 미사일을 경계하면서 상승을 계속했다. 안대위는 그 정도의 샘 미사일이 ECM 장비에 탐지가 안된 채 어떻게 가까이까지 접근해 왔는지 이상히 여겼다. 나도 거기에 동감이었다. 약 45초 후 기체가 심하게 좌로 기울며 요동쳤다.
“권소령, 무슨 일입니까? 아직도 계기비행을 합니까?”
라고 안광휘 대위가 물었다. 기체의 안정을 되찾은 후 계기판을 보니 PC - 1 유압통의 표시가 ‘제로’이고 PC - 2와 유틸리티 시스템의 계기바늘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몸속에 숨어있던 불안이 다시 고개를 내밀면서 이성理性을 흔들어 놓았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나는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고맙게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경험담 하나가 문득 뇌리에 떠올랐다. 헤르난데스라는 미해군 조종사가 유압의 상실을 롤로 커버하면서 추락의 난관을 극복했다는 얘기였다. F - 4가 유압을 상실하면 스타비레이터가(승강타 역할을 겸한 수평미익)가 록크돼서 기수를 크게 들어 올린다. 이렇게 되면 조종간은 구실을 못하고 라다(방향타)와 물력조정으로 타개할 수 밖에 없다.
pc - 2가 제로가 되자 정설대로 기수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나는 라다(방향타)를 우右로 잔뜩 잡아서 기수의 요윙(좌우 움직임)을 우측으로 걸어, 기수를 눌러 내렸다. 이어서 기수가 수평위치를 통과하는 순간 슬로틀을 아이덜로 하고 스피트 브레이크를 내서 파와. 다이브(유동력 급강하)를 방지했다. 그후 즉시 이번에는 라다를 좌로 밟아 기수의 요윙(좌우 움직임)을 좌측으로부터 밟아 다운스윙(아래로 움직임)으로 가져가 수평으로 기수를 들어 올렸다. 여기서 아프터버너를 점화하고 스피드 브레이크를 집어 넣자 기체는 하프롤로로 상승했다. 이때 화재가 일어났으므로 안광휘 대위에게 비상탈출 절차를 ‘단독작동’으로 조절해 놓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해 놓으면 안대위는 나를 남겨놓고 언제든지 자기 마음대로 탈출하게 할 수 있다. 안광휘 대위는
“어째서 둘이 함께 탈출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나는
“적에게 포로가 되어 십년이나 이십년동안 하노니 힐틈(월맹 하노이에 있는 미군포로수용소)의 손님이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라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권소령, 그쪽에서 탈출신호를 할 때까지 나도 남겠습니다”
안대위의 말이었다.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적敵의 포로가 되어 치욕스럽게 살고 싶소.”
하는 내 말에 안광휘 대위는 울음섞인 말로 말했다.
"어찌 나혼자 살겠습니까. 나도 같이 죽겠습니다.”
나의 애기愛機 기체는 폭발의 진동에 쌓여 꼭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지만 눈 아래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육지가 펼쳐져 있었다. 무전기에서는
“탈출하라! 탈출하라! 빨리 탈출하라!”
하면서 소리지르는 전우들의 부르짖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불타고 있는 기체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것을 걱정해서였다. 우리 주위를 들러싼 A - 7과 F - 4가 격렬한 롤링(흔들림) 상태에서 간간이 보였다. 틀림없이 20킬로미터 내로 접근하는 적기(미그기)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군(미군) 조종사들의 심경에는 적개심敵愾心이 일기 때문이다. 막 해안을 벗어나자 최후의 유틸리티 시스템이 정지했고, 작은 폭발음이 나의 기체를 심하게 흔들었다. 이것이 수초전에만 일어 났어도 적지敵地 월맹군 한복판에 떨어지게 됐을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통했는지 모른다. 그 순간 나는 생존하게 되면 꼭 신앙을 갖겠다고 마음속에서 다짐했다. 완전히 유압을 상실한 지금 라다(방향타)는 무용지물이었다. 기수機首를 쳐든 채 기수를 내릴 수 없게 된 기체는 실속失速해서 스핀상태로 들어갔다. 기체의 회전에 따라 바다와 육지가 교대로 보였다 안보였다 을 반복했다. 나는 너무 두려워서 기체에 머물러 있었다. 해안에 너무 가깝다는 것과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대위는 빨리 탈출하자고 소리쳤다. 나는 마음 속으로 어차피 죽을 놈이라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텐데 하면서 일부러 태연한 자세를 취했다. 이제 내 목숨은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의 처신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안광휘 대위에게 3회전 정도 더 참으라고 말하고는 어떻게든 스핀상태를 벗어나 기체를 바다에 추락하도록 하고자 시도했다. 그래서 드래그슈트(감속 낙하산, 착륙후 사용함)를 펴보았지만 기대하는 효과는 없었다. 이전부터 안대위와 내가 나의 애기愛機를 떠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오면 내가
“안대위 탈출, 탈출, 탈출”
하고 소리쳐 세 번째의 탈출이란 말을 신호로 안광휘 대위가 탈출 코드를 당기도록 말해 놓았다.
“이제 탈출 할 때가 된 것 같군.”
마침내 내 입에서 최후 결단을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
“권소령. 핸들을 조절해 놨습니다. 나에 이어 그쪽도 탈출하면 됩니다. 그럼 꼭 살아남기를 빕니다.”
“안대위, 탈출, 탈출, 탈출...”
후방석의 사출음이 들렸다. 후방석 보다 한 순간 뒤져 전방석도 사출하게 돼 있다. 만약 전방석이 먼저 사출되면 로켓트 분사열로 후방석이 타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후방석 사출 후 나는 문뜩 내 사출장치가 고장이 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그래서 사출코드에 손을 대려는 순간 작동이 되어 나는 좌석과 함께 치솟아 올라 쇼타임 100에서 떨어져 나갔다. 하중荷重의 고통도 없이 갑자기 조용해진 공간에서 나는 서서히 공중회전을 했다. 얼핏 안광휘 대위의 낙하산이 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혹시 이대로 좌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에 싸였다.
그러나 사출좌석은 메이커의 선전대로 멋지게 작동돼 내 몸은 좌석에서 분리됐다. 낙하산 줄이 힘차게 빠져나가자 낚아채듯이 패러슈트가 퍼졌고 그 순간 등줄기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활짝 펴진 낙하산은 대단히 아름답게 보였지만 나는 우선 육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발밑으로 눈을 돌렸다. 홍하紅河로부터 적(월맹군)의 경비정, 대형화물선, 쟝크선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본 나는 다시 포로가 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제발 포로가 되는 일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이때만큼 하나님에게 매달리고 싶은 때도 일찍이 없었다.
적(월맹군)의 몰려드는 선박에 못박혀진 나의 시계視界 안으로 콜세어와 팬텀기가 날아와 적(월맹군)을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잠시나마 상쾌해졌다. 나의 전우가 모두가 귀환하지 않고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연료도 다 떨어져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공포와 SAM을 피해 가면서 나를 잡을려고 접근하는 적(월맹군) 선박을 쫓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낙하산에 매달린 자신을 고독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했던 나는 전우들의 소중한 존재를 알고는 큰 용기를 얻었다. 기운을 차린 나는 조난용 휴대무전기를 갖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최후의 교신 수단이 있는 것이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곧 그 곳에 도착합니다. 오바..”
라고 SAM(수식 및 구조) 팀의 답변이 들려왔다. 됐다! 기쁨에 넘쳐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날 최대의 마음 든든함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수백 피트 앞에서 안광휘 대위가 낙하산에 매달려 미친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기의 건재함을 표시하고 있었다. 내가 자기를 보았다고 느끼자 이번에는 두 팔을 새처럼 날개를 폈다. 나도 그처럼 두 팔로 날개짓을 했다.
나와 안광휘 대위는 천천히 땅으로 하강下降해 갔다. 이제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나는 집안 일이 떠올라 출전出戰 전에 이혼을 제의해 온 아내의 편지를 생각했다. 만약 여기에서 적(월맹군)의 포로가 되면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될 것인지를 생각했다. 포로가 됐을 경우 정신적인 의지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아내에 대한 강한 신뢰감이라는 것을 이따금씩 들어 왔으나 지금 나에게는 그 중 어느 하나도 없었다.
이혼을 제의한 아내의 일을 생각하고 나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아내에게도 버림받고 내 조국에게도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조국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오늘 나는 미국이라고 하는 남의 나라 군대와 목숨을 걸고 싸울 리가 없었다는 생각에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 나는 더욱 눈물어린 슬픔이 북받쳤다. 감정이 흐트려져 내 인생 자체가 휴지처럼 구겨져 엉망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안의 일이었고 내가 구출된다면 인생을 다시 한번 멋지게 고쳐서 열심히 살겠다고 결심했다. 생각이 현실로 돌아오자 바로 눈앞에 처한 어려움에 마음이 집중됐다. 몇 피트 길이의 줄에 매달려 있는 구명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낙하산에 매달린 나의 몸은 시계추처럼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흔들림이 극에 달하자 패러슈트의 한쪽 모퉁이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낙하산 하강 경험이 없는 나는 패러슈트가 영겨서 그대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해면상海面上 약 6미터에서 구명대를 내려다 보면서 낙하산을 분리시켰다. 따뜻한 흙탕물이 내 복부腹部를 강하게 때렸다. 더러운 물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필사적으로 버둥대며 수면상으로 나왔다. 겨우 홍하紅河의 하구 부근에 착수한 것이었다. 구명대의 줄을 당기고 있으려니 바로 옆에 무엇인가 떠 있었다. 그것은 상류에서 떠 내려온 월맹군의 시체였다.
다음 순간 나는 올림픽 수영선수와 같은 속도로 구명대로 향해 헤엄쳐 나갔다. 구명대에 타고 표류한 것은 15년이나 되는 듯이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약 15분 정도로서 오끼나와호 소속의 해병대 헬리콥터 3대가 상공에 도착했다. 나와 안광휘 대위는 눈깜짝할 사이에 헬리콥터로 끌어 올려져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에 헬리콥터는 잽싸게 병원선病院船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원선에서 대통령에게라도 하는 듯한 특별한 대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장부터 쿡크까지 모두가 인사차 나와 주었고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마음을 써주었다. 군의관들은 대거 몰려와 우리들을 맞이했고 이상이 없는지 몸 구석구석을 진단했다. 내 등줄기는 상당히 당겼지만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고 우리는 다시 헬리콥터 편으로 코니(항공모함)로 귀함하게 되었다.
우리를 태운 헬리콥터가 CVA - 64(항공모함 코니)의 상공을 선회하자 갑판위에 많은 승조원들이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서히 착함着艦하자 헬리콥터의 엔진소리보다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나는 안대위와 같이 코니의 갑판위에 발을 딛는 순간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나왔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만이 줄줄 흘렀다. 옆을 보니까 안광휘 대위도 흐느껴 울고 있었다. 전쟁중에 적군敵軍의 총뿌리를 벗어나 이렇게 귀환한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큰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마음속의 갈등으로 한 잠도 이루지를 못했다. 아내의 이혼 제의에 나는 분노와 실의가 교차되는 갈등을 느꼈다. 군의관이 무슨 약을 투여했는지는 모르나 효과가 나타나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정신이 든 것은 당직 사관이 깨워서였다. 비행장구를 반납하고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나는 또 한번 실망에 잠겼다. 귀국이라니 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다시 팬텀기를 몰고 소련군이든 북한군이든 싸우고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공군사관학교를 지망했다. 그 꿈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아직 나에게는 그러한 용기가 있었다. 비행대 대장인 ‘뉴만’ 소령이 나타나 영어로 말했다.
“권소령, 비행장구는 반납하게, 내일 자네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게 돼 있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국 명령을 받으면 가족을 만나게 돼 기뻐서 어쩔줄 몰랐지만 나에게는 돌아갈 가정이 없었다. 부모님 곁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상심한 상태로는 누구와도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작전 수뇌부에 귀국 명령의 취소를 요구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후 안 일이지만 미공군에서는 한번 실패한 전투기 조종사는 두 번 다시 전투에 내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국으로 귀국 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후 공군본부에 들여 예편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아내와의 이혼 절차도 끝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제부터 제로(0)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고향인 부산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나에게 접근해 온 사람은 박중배 씨였다. 그는 기독교에 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에게 기독교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박중배 씨는 바쁜 일을 제쳐두고 나를 하나님에게 인도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그의 노력에 감동했고, 결국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나는 나 가까이에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나는 교회에 나가 침례의식을 받았고, 교회 여신도인 강민희 씨와 결혼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고전무용을 전공했고 지금은 부산에서 대학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녀는 춤을 어찌나 잘 추는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줌을 질금질금 싸게 했다. 내가 이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대단한 행운이었다. 내가 비록 베트남 전쟁에서는 나의 애기愛機를 잃고 패했지만 강민희 씨와 결혼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나로서는 위대한 승리였다.
이듬해 아내(강민희)는 아들을 출산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아들은 물론이요, 우리 자손 대代에는 절대로 전쟁이라는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또한 핵核을 가진 북한과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위험도는 지금보다 훨씬 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그리고 북한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위대한 권능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다.
- THE END -
권우상 프로필
* 본명 : 권우상. 아호 : 성해(成海). 필명 : 권우상. 권성해.
* 명리학자. 소설가. 아동문학가. 칼럼리스트. 웹디자이너
* 권성해명리학연구소 대표. 국제일보 논설주간. 한국소비자신문 논설주간
주필. 편집국장. 한국미디어 논설위원. 양산신문 객원논설위원 역임.
* 현재 경북종합신문에 연재소설. 시사칼럼 역학칼럼. 오늘의 운세. 사설 집필
* 경북종합신문. 구미일보. 뉴스경남. 창원일보. 경남매일. 충청경제일보에 칼럼 집필.
* 문학작품현상공모 당선 등단. 작품활동기간 49년 (1966년 - 2015년)
* 대표작 : 장편소설 <봉이 김선달> <박혁거세> <말띠 여자> <실락원에서 복락원 까지> <여자는 세번 태어난다> <겨울바다. 저 건너 또 하나의 풍경> <관상을 봐 드립니다> <배비장> <동명성왕의 후예> <김삿갓> <오성과 한음> <한명회> 대 하소설 <제7의 왕국> <삼국패왕지> 단편소설 <천둥소리> <실패한 소설가> <분 노의 세월> 희곡 <박봉산> 등 시. 동시. 동화. 희곡. 수필. 칼럼 3만여 편 발표.
* 수상경력 : mbc방송작품공모. 영남일보신춘문예. 부산mbc문예작품공모. 부산mbc 문예상. 청구문화재단문학상. 창주문학상. 덕토노인문학상.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맟 한국능률협회 아이디어경영대상 등 수상.
